백화점 업계가 이름값이 높은 명품 브랜드들의 팝업 매장(팝업스토어)을 잇따라 운영하며 고객 소통 강화에 나서고 있다. 통상 팝업 매장은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신규 브랜드들이 홍보를 위해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팝업 매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각종 단독상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데다 명품 소비 세대가 젊어져 팝업 매장 운영이 더욱 빈번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2030세대들이 백화점 전체 명품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등 ‘큰손’으로 부각되면서 백화점 업계는 2030세대를 위한 공간 마련에도 분주하다.
▶신규 브랜드 홍보용 공간에서
명품 홍보 공간으로 바뀐 팝업스토어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지난 10월 보름 동안 명품 브랜드 프라다(PRA DA)와 손잡고 더현대서울 1층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프라다 샬레’ 팝업스토어에서는 스키 폴·스노보드 등 겨울 스포츠 용품과 프라다의 컬렉션 등 총 300여 개의 겨울상품을 선보였다. 매장은 겨울 느낌을 위해 알프스 목조 산장을 뜻하는 ‘샬레’를 형상화했다. 매장의 벽과 바닥 벤치·테이블·행거 등을 원목을 사용해 꾸몄다. 앞서 지난 9월에는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레이디 디올’ 팝업스토어도 선보였다. 레이디 디올 상품만 선보이는 팝업스토어를 운영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팝업스토어 매장 외부 모습을 디올의 레이디 디라이트(D-Lite)백 디자인을 그대로 형상화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팝업스토어 운영 기간 동안 해당 매장에서 판매하는 ‘단독 상품’이 있어 백화점 업계에서도 이들 팝업 매장을 유치하기 위해 S/S, F/W 시즌이 바뀌는 시점엔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의 명품 팝업스토어 운영 횟수는 2019년 3회, 2020년 4회에서 올해 15회까지 증가하며 4~5배나 늘어났다. 특히 올해 초 오픈한 더현대서울이 MZ세대들의 놀이터라는 별칭까지 얻을 정도로 화제몰이를 하면서 팝업 매장 유치 횟수가 대폭 늘어났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에서 팝업스토어를 여는 점포는 해당 브랜드를 구매할 수 있는 구매 잠재력이 큰 고객층을 보유했거나 브랜드 이미지에 있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트렌디한 점포”라고 설명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도 지난해 점포 안에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1층 중앙광장에 위치한 ‘더 스테이지’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을 줄줄이 선보이며 핫플레이스로 입소문이 났다. 1층 한복판에 매장에 들어가지 않고도 누구나 제품을 쉽게 둘러볼 수 있는 명품 팝업 공간을 연출한 것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이곳에 루이비통, 고야드, 샤넬, 구찌, 버버리 등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의 팝업스토어를 잇따라 선보였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하루 평균 100만 명의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추가 비용 없이도 브랜드와 신제품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럭셔리 브랜드의 문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명품 브랜드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고급 이미지를 해치지 않으면서 신상품 출시 반응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어서 이곳을 선호하고 있다. 실제로 더 스테이지는 내년도 1분기까지 팝업스토어 일정이 꽉 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 스테이지에 루이비통의 2021 가을·겨울 컬렉션 런웨이 장소였던 루브르 박물관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해 호평을 받았는데, 이 기간 동안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명품 장르 전반에서 12.5%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10월에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구찌의 100주년을 기념해 창립자 구찌오 구찌가 17살 처음으로 근무한 사보이 호텔을 모티브로 한 팝업스토어도 열었다. 지난 9월에는 메종 고야드의 신규 컬렉션 ‘고야드 제트 블랙(Jet Black)’을 신세계 강남점에서 글로벌 최초로 공개했다. 이때 파우치나 클러치로 사용이 가능한 메종 고야드의 인기 상품 ‘세나’ 시리즈 등 한정 상품을 선보여 팝업스토어의 특별함을 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롯데백화점은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에서 팝업스토어를 다수 열고 있다. 지난 5월과 7월에 이곳에서 각각 ‘구찌 비러브드(BELOVED)’ ‘샤넬 J12 워치’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특히 지난 8월에는 디올의 주얼리 신상품을 소개하는 ‘디올 럭키 참’ 팝업스토어를 운영했다. 이곳의 오픈 행사에 참여한 김연아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착용한 귀걸이, 반지 등 주얼리 가격만 1억원이 훌쩍 넘어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에서 진행됐던 ‘보테가베네타 살롱02’ 팝업스토어는 일종의 설치 예술품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연출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브랜드의 상징인 그린 색상으로 뒤덮인 팝업스토어 공간이 멀리서도 고객들의 눈에 확 띄면서 주목도가 높아졌다.
예술 전시와 같은 팝업스토어 구성은 실제로 판매 신장에도 영향을 줬다. 갤러리아백화점은 2019년부터 상시 팝업존을 선보이고 있다. 압구정 명품관 이스트(EAST) 정문 출입구에 위치한 메인 공간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디올’을 첫 시작으로 지난 2년간 루이비통, 고야드, 펜디, 반클리프앤아펠, 쇼메, 브레게 등 40여 개의 팝업스토어를 지속적으로 내놨다. 특히 지난 7월에 열었던 ‘브레게’ 팝업스토어는 전체 매장을 하나의 기계장치 모습으로 꾸며 신선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중력으로 인한 시간 오차를 줄여주는 장치인 투르비용은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브레게’의 창립자인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발명해 현재까지 특허권을 갖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매장 입구에 투르비용 케이지를 공중에 매달아뒀고, 밸런스 휠과 스프링 등 투르비용 작동의 원동력이 되는 장치들을 매장 곳곳에 설치했다.
▶2030세대를 위한 전용공간 확보에 사활… 백화점이 달라졌다
2030 소비자들이 백화점 전체 명품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등 ‘큰손’으로 부각되면서 백화점 업계는 2030세대를 위한 전용공간 마련에도 나서고 있다. 특히 백화점의 상징성이 큰 1층까지 2030세대를 위한 체험공간으로 매장을 탈바꿈하면서 새로운 소비 주역 잡기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30대 이하 고객만을 위한 VIP 라운지를 만들었다. 젊음을 뜻하는 ‘영(Young)’과 ‘VIP’의 마지막 글자를 따 조합한 ‘클럽 YP 라운지’는 더현대서울과 판교점에서 운영을 시작했고, 주요 점포로 확대할 계획이다.
앞서 현대백화점은 올해 업계 최초로 2030을 위한 VIP 멤버십을 시작하기도 했다. ‘클럽YP’는 1983년생 이하 고객 중 직전 연도에 현대백화점카드로 2000만원 이상 구매한 고객을 대상으로 자체 심사를 거쳐 가입 대상을 선별한다. 구매 실적이 없어도 기부 우수자, 봉사활동 우수자 등도 내부 심사를 거쳐 회원으로 선정하는 게 특징이다. 업계에 따르면 실제로 2030세대는 백화점 명품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큰손으로 부상했다는 게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3대 주요 백화점 전체 명품 매출에서 2030세대의 매출을 살펴보면, 현대백화점에서 65.8%, 신세계백화점에서 50.7%, 롯데백화점에서 44.9%였다. 특히 지난해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었는데 그 이전 해인 2019년과 비교해도 17.2%포인트, 1.4%포인트, 3.5%포인트가 각각 늘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크리에이터 활동으로 수익을 내거나 명품 리셀 등 2030세대들이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이 다양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제1의 자산으로 꼽히는 집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며 집 구매에 어려움을 겪자, 실제적으로 내가 취할 수 있는 고가의 물건 구매에 나섰다는 평가도 있다.
이같은 새로운 트렌드가 일반적인 현상으로 나타나자 백화점들은 한 명의 2030세대라도 더 모객하기 위해 매장 입구인 1층까지 MZ세대를 위한 공간으로 꾸미면서 구애에 나섰다. 이들 세대가 열광하는 온라인 리셀 전용 매장을 오프라인에 들여놓는 모험을 벌이기도 하고, 인테리어에 관심 많은 이 세대들을 위해 생활 장르 전문관을 새롭게 선보이기도 한다. 롯데백화점 일산점은 지난 9월 백화점 1층에 247평(약 817㎡) 규모 다락별장을 열었다. 이 공간에는 일산을 대표하는 서점과 갤러리가 입점하기도 했다. 회원 11만 명을 보유한 일산 대표 독립서점 한양문고와 서울 대치동에서 유명세를 얻은 프리미엄 갤러리 ‘아트뮤제’다. 게다가 전 세계 유통사 최초로 입점한 ‘반얀트리’ 아로마 전문 매장과 수플레 팬케이크로 유명한 브런치 카페 ‘젠젠스퀘어’도 입점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MZ세대 관련 매출만 보름여 만에 38%까지 늘어났다.
또 롯데백화점은 영등포점 1층에 국내 최초 한정판 스니커즈 거래소인 ‘아웃오브스탁’을 운영 중이고, 현대백화점은 더현대서울 지하 2층에 MZ세대를 겨냥한 스니커즈 리셀 전문 매장인 ‘BGZT(번개장터)랩’을 입점시키기도 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8월 서울 강남점 지하 1층 파미에 스트리트에 다양한 홈퍼니싱 브랜드를 만나볼 수 있는 ‘홈스타일링 전문관’을 열기도 했다. 2650㎡(800여 평) 규모의 홈스타일링 가구 전문관에서는 이노메싸, HAY, 데스커, 알로소, 슬로우 등 총 12개의 국내외 인기 브랜드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MZ세대들을 위해 합리적인 가격의 실용적인 소품을 가져다둔 것은 필수였다.
업계 관계자는 “온라인으로 모든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세상에 익숙한 이들을 오프라인 공간으로 나올 수 있게 만들기 위한 유통업계의 치열한 고민이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며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세에 개장했던 더현대서울이 엄청난 인기몰이를 한 것도 오프라인 공간에서 물건을 보고, 만지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남자들도 명품에 지갑 연다… 남성 라인업 강화
여성 고객 비중이 절대적이었던 백화점 명품 시장에는 최근 남성 고객 비중도 급격하게 늘었다. 지난해 백화점을 비롯해 온라인 쇼핑몰의 남성 명품 시장 규모는 1조1041억원으로 무시할 수 없는 크기가 됐다. 이에 백화점들은 남성들에게 인기 있는 명품을 입점시키거나 전용 명품관을 열면서 남성 고객들에게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압구정점 4층을 남성 명품관인 멘즈 럭셔리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압구정본점은 구찌 멘즈, 발렌시아가 멘즈, 프라다 워모, 루이비통 남성 전문 매장이 입점해 있다. 특히 기존에 발렌시아가, 프라다, 루이비통 등이 이미 1~2층에 위치했지만 남성 전문 매장을 추가 유치해 브랜드를 강화했다. 무역센터점은 올해까지 남성 패션층을 명품으로 강화하고 ‘남성 럭셔리 부티크’로 재단장할 계획이다. 실제로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현대백화점의 남성 명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39.2% 늘었다.
롯데백화점도 본점 5층을 남성 명품관으로 만들고 30여 개의 남성들을 위한 매장을 입점시켰다. 또 본점에서는 시계를 좋아하는 남성들을 위해 명품 시계 카페인 ‘IWC바’를 운영하고 있다. 스위스 명품 시계 IWC 대표 컬렉션인 빅 파일럿 워치를 주제로 매장을 꾸몄는데, IWC가 스위스 제네바에 칵테일바를 차린 뒤 두 번째로 선보인 식음료 매장이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남성 명품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8% 늘었다고 밝혔다.
신세계백화점은 남성 명품관인 멘즈 살롱에 루이비통, 구찌, 벨루티, 펜디, 톰포드, 돌체앤가바나 등 남성 럭셔리 브랜드를 오픈했다. 올해 3월과 8월, 각각 본점과 대전 아트앤사이언스에 톰포드 남성 매장을 배치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 톰포드는 화장품·선글라스를 제외한 의류·잡화 매장 출점에 보수적이기로 알려져 있다. 최근 3년간의 신세계백화점 남성 명품 신장률은 2018년 32.9%, 2019년 31.9%, 지난해 27.8%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남녀상품이 같은 매장에 있는 복합존 형태로 운영해 왔다. 최근 트렌드는 남녀 각각의 매장을 내는 것이다. 최근 2030대 남성을 중심으로 남성 해외 패션 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남성 명품 브랜드관을 강화하는 것은 백화점들의 일반적인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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