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한국 역사상 최초로 유치한 세계선수권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다. 앞선 1970년 제6회 아시안게임 때 서울 유치를 성공하고도 선수들과 관광객을 맞아들일 경기장과 숙박시설, 재원(財源)이 없다는 이유로 개최권을 자진 반납해 국제 사회에서 망신을 당한 직후였다. 한국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개최한 이 사격선수권대회를 맞아 정부가 바삐 움직였다. 태릉에 현대식 국제사격장을 세우고 최초로 외국인 선수촌을 지었다. 이 선수촌이 추후 일반에 분양된 서울 광진구 워커힐아파트다.
939
01:11재생시간, 이 동영상의 길이는 1분 11초 입니다.
화질 선택 옵션
화질 선택 옵션
이 아파트는 올림픽선수촌아파트(1988년 서울올림픽), 아시아선수촌아파트(1986 서울 아시안게임), 인천 구월아시아드선수촌아파트(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강릉 유천선수촌아파트(2018 평창동계올림픽) 등 선수촌아파트의 시초다. 대규모 국제 대회를 맞아 선수 숙소로 준공한 뒤 대회가 끝나고 일반에 분양한 아파트들이다.
원본보기
지난 11월 29일 찾은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아파트 전경. /고성민 기자
최초의 선수권 아파트, 외국인 선수들은 “원더풀”
워커힐아파트는 사격선수권대회를 앞둔 1978년 준공됐다. 지상 최고 13층, 14개동, 576가구(1단지 11개동·432가구, 2단지 3개동·144가구)다.
제42회 사격선수권대회는 68개국, 1500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당시 역사상 최다 참가국 기록을 쓴 대회였다. 우리나라가 대규모 스포츠 행사를 충분히 개최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된 행사였다.
원본보기
1978년 9월 27일 서울운동장(2008년 폐장된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 개회식에 선수단이 도열해 있다. /국가기록원 선수촌 아파트들은 대부분 수준급으로 준공됐는데, 워커힐아파트는 수준급을 넘어 당대 초호화판으로 지어졌다.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는 국내에서 열리는 첫 세계대회로, 국가가 총력 지원해 치러낸 행사였기 때문이다. “사격대회를 계기로 외빈들이 한국은 참 아름답고 한국 사람은 친절하다는 인상을 갖고 돌아가도록 모든 관계자들은 신경을 써서 대비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워커힐아파트 건설을 위해 사립 성동국민학교가 쫓겨날 정도였다. 국가기록원에 남아있는 ‘세계사격대회 선수촌 건립에 따른 협조 의뢰 회신’ 문서에 따르면, 주식회사 워커힐은 1978년 7월 서울시교육감에 “성동국민학교가 워커힐아파트 건립부지로 소요돼 워커힐이 매입했으니, 본 대회가 국가적 중요 행사임을 양찰해 성동국민학교가 자양동에 이전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문서를 보냈다. 이에 서울시교육감은 “자양동 부지를 매수해달라고 서울시에 추천했다”는 회신을 보냈다. 민간기업이 사립초등학교 부지를 사서 아파트를 짓곤, “쫓겨난 초등학교의 이전부지를 서울시교육청이 마련해달라”고 교육감에 요청한 것이다. 아무리 국가적 행사일지라도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워커힐아파트는 정부보조금 10억원을 들여 동당 약 7100만원으로 조성됐다. 시민아파트는 동당 1200만원 건축비가 들었으니, 6배 가까이 건설비를 더 들였다. 고(故)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은 자서전 ‘세계를 향한 도전’에서 워커힐아파트 건설비에 대해 “대한체육회 1년 예산이 1억일 때 10억은 놀랄만한 액수”라고 했다. 이 아파트에 대해 당시 선수들도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1978년 9월 21일자 조선일보는 이렇게 보도했다.
12층의 호화로운 초현대식 아파트 11개동에 20개국에서 임원, 선수 및 그들의 가족 등 420여명이 여장을 풀었다. ‘원더풀, 이렇게 완벽한 시설에 훌륭한 대접을 받기는 처음입니다.’ 선수들은 희색이 만면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첫 세계선수권대회란 점에서 뜻이 깊은 이 대회 참가자들을 위해 특별히 계획되고 세워진 이 선수촌 아파트는 국제적으로도 1급 규모와 시설을 자랑하고 있다.…(중략) 선수들은 선수촌에 도착, 방을 배정받고는 이구동성으로 격찬하면서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워커힐아파트는 국내 아파트 최초로 중앙공급식 냉방을 탑재했고, 통풍과 채광에 장점이 있는 와이(Y자) 모양으로 단지를 독특하게 설계했다. 56~77평형 대형 평형으로만 구성했다. 선수촌 입지로 이곳이 낙점된 이유는 아차산 자락에 위치해 각국 선수들과 임원의 경호에 유리하다는 점이 작용했다고 전해진다. 광진구가 서울의 외곽에 속할 때라 당시 광고는 “도심을 떠난 도시인의 집”, “공해와 도심을 떠난 쾌적한 안식처”로 아파트를 소개했다. 분양가는 1979년 기준 56평형이 4472만원(3.3㎡당 80만원)으로 국내 역대 최고가였다. 같은해 압구정현대아파트 54평형 분양가가 3996만원(3.3㎡당 74만원)이었다.
‘워커힐’은 6·25 전쟁의 영웅이자 초대 미8군 사령관인 월턴 H. 워커(WaltonH. Walker) 장군을 기리기 위해 붙은 이름이다. 워커힐아파트는 SK에코플랜트(SK건설)의 전신인 선경종합건설이 지었고,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워커힐호텔도 SK그룹 소유다. 아파트 단지 내 도로와 호텔 내부 도로가 서로 이어져 있다. 워커힐호텔은 국제관광공사가 운영하다 1973년 선경그룹(SK그룹)이 인수했으며, 마찬가지로 ‘워커힐’을 명칭으로 쓰고 있다.
호텔과 아파트가 바로 옆에 있다 보니, 워커힐아파트 주민들이 1997년 워커힐호텔 측에 “일광욕을 금지하라”는 단체 항의 전화를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프랑스 등에서 초청된 남녀 혼성 ‘워커힐 쇼’ 단원들과 외국인 주방장·직원들은 호텔 내 외국인 전용 기숙사 3층 옥상에서 상의를 탈의하고 종종 일광욕을 즐겼는데, 워커힐아파트 창문이나 단지 내 길가에서 이 모습이 빤히 보여 주민들이 “일광욕을 중지하라”고 호텔에 항의했다는 일화다. 워커힐호텔은 결국 외국인숙소 옥상 문을 잠그고 출입금지시켰다고 한다.
복싱계와 독특한 인연… 세계 챔피언의 산실 ‘13동 1102호’
초고가 아파트인 만큼 워커힐아파트는 정재계 유명인들이 거주했다. 정재석 전 경제부총리, 이종림 전 교통부장관, 강수림 전 국회의원, 박만송 삼화제분 창업주, 원용석 전 한국경제신문 사장, 이원순 전 한국해광개발 사장, 이무일 무림그룹(무림제지) 창업주, 신태수 전 건국대 이사장 등 부유층이 워커힐아파트에 거주했다.
원본보기
(왼쪽부터) 복싱선수 장정구, 이일복, 김철호씨가 워커힐 합숙소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조영섭 관장 제공 특히 워커힐아파트는 복싱계와 독특한 인연이 있다. ‘복싱의 대모’라 불리는 고(故) 심영자 88프로모션 회장의 자택이 워커힐아파트 13동 1102호였다. 심 회장의 워커힐 자택은 세계 챔피언의 산실로 유명하다. 심 회장은 남는 방을 합숙소로 쓰며 선수들을 불러들여 각종 보양식을 챙겨주며 최요삼, 장정구, 문성길, 김철호 등 세계 복싱 챔피언을 배출했다. 매일 아침 워커힐아파트 언덕 뒷길을 오르내리며 뛰어다니는 선수들이 보였다고 한다.
과거 이 합숙소에서 훈련했으며 이후 88프로모션 트레이너로 활동했고, 현재는 서울 강동구 ‘문성길 복싱다이어트클럽’의 관장인 조영섭씨는 조선비즈와 만나 “13동 1102호는 챔피언들이 쓰는 소위 A급 합숙소, 22동 1002호는 나 같은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훈련하는 B급 합숙소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1102호는 고모(심 회장)가 자택 남는 방을 내준 곳이고, 1002호는 전세로 얻어준 곳”이라면서 “매일 아침 워커힐 뒷산을 타고, 오후에 ‘봉고차’를 타고 영등포에 있는 체육관으로 이동해 훈련하던 게 일정이었다. 워커힐에서 합숙하며 챔피언이 된 선수들이 모두 고모 덕분이라며 아직도 고마워한다”고 말했다.
지지부진 재건축, 개별이냐 통합이냐
워커힐아파트는 준공 40년이 넘었지만 현재도 고가(高價) 단지다. 전용면적 162㎡(56평형)가 지난 7월 24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3.3㎡(1평)당 약 4300만원이다. 다만 한때 더 저렴했던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평당 1억원’을 돌파하며 집값이 급등한 것과 비교하면 아쉽게 느껴질 수 있다. 한국 부동산의 중심이 강남으로 축을 옮겨 최고가 자리는 내줄 수밖에 없었다.
워커힐아파트는 재건축 연한을 진작 채웠지만, 사업에 그다지 진척이 없다. 가장 큰 원인은 땅 문제다. 1단지(11~33동)는 대부분 제2종일반주거지역으로 일부만 자연녹지지역인데, 2단지(51~53동)는 모두 자연녹지지역이다. 자연녹지지역은 도시 녹지 공간 확보를 위해 지정하는 곳으로, 아파트 건설이 불가능하다. 2단지는 재건축이 아예 불가능한 땅이라는 얘기다. 1·2단지는 도로, 난방, 전기, 수도 등을 공동사용하는 하나의 단지로 준공돼 서울시는 1단지 단독 재건축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즉, 땅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양 단지 모두 재건축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당시 건축법은 자연녹지지역인 2단지가 제2종일반주거지역인 1단지와 함께 동일한 단지로 지어지면, 2단지도 제2종일반주거지역 규정을 적용받도록 했다. 그러나 현행법은 자연녹지지역에서 아파트 건설을 원천 금지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셈이다. 2단지 주민들은 제2종일반주거지역으로 종상향해달라고 요구해 왔지만,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문턱을 통과하지 못했다. 서울시는 2011년 10월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에서 “역사적·건축사적 의미가 있는 지역으로 재건축을 통한 고층화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또 1단지는 재건축, 2단지는 리모델링을 추진하며 한때 주민 의견도 갈라지기도 했다. 2단지 리모델링이 좌초되며 현재는 1·2단지 통합 재건축을 추진 중이지만, 2단지의 땅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 리스크를 안고 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