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에게는 낯설겠지만 서울에는 두 개의 용산(龍山)이 있다. 원래 용산으로 불리던 터(구(舊) 용산)와 근대에 새로 이름이 붙여진 신(新) 용산이 그것이다. 구 용산은 현재 용산구 산천동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천주교용산교회(용산성당)와 주변 일대다. 신용산은 용산역을 중심으로 용산차량사업소(철도차량기지)와 주한미군기지, 용산가족공원 등이 들어선 현재 우리가 흔히 아는 행정구역으로서의 용산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했던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핵심지역으로 각광을 받았고, 현 정부는 철도차량기지 터에 8000채 규모의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놔 세간의 주목을 받는 곳이다.
● 조선 부자 만들어낸 마포의 용산
용산 지도. 붉은 점선을 경계로 왼쪽이 구용산, 오른쪽이 신용산이다. 그래픽=강동영 기자
지형적으로 어디를 ‘진정한’ 용산으로 봐야 할까. 구용산은 지역 이름인 동시에 지역을 대표하는 산을 의미했다. 한양도성의 오른쪽을 감싸주는 우백호(右白虎)인 인왕산은 안산(연세대 뒷산), 만리재(만리동 고개), 효창공원 등을 거쳐 한강 앞에서 굵직한 산등성이를 이루면서 멈춘 자세를 형성하고 있다. 이때 보이는 등성이를 예전에 용산이라고 불렀다. 현재 용산성당이 들어선 곳이다. 지금은 아파트 학교 빌딩 등이 빼곡히 들어서 옛 모습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마치 북쪽에서 용이 꿈틀거리며 한강까지 내려온 뒤 머리를 들이밀고 물을 마시는 듯한 형상을 갖추고 있어 용산이라는 지명을 얻게 됐다.
용산 산등성이에 자리 잡고 있는 용산성당. 안영배 논설위원.
용산은 아름다운 숲과 휘어 돌면서 호수처럼 잔잔한 물길을 형성하고 있는 한강(당시 마포강), 용의 여의주처럼 한강 가운데 밤섬 등이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고려와 조선의 시인 묵객들은 용산팔경(龍山八景:용산의 8가지 경치)을 감상하며 시를 짓기도 했다. 고려 말의 문신 목은 이색은 ‘용산이 반쯤 한강물을 베개 삼았는데, 소나무 사이 저 집에 묵지 못함이 아쉽구나’라고 노래했다. 풍수학적 관점에서 보면 용의 머리를 용산으로 볼 때 용이 바라보는 여의주(밤섬) 방향은 마포 일대다. 즉 원래의 용산은 마포구 도화동, 공덕동, 염리동, 용강동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역사적으로도 용산 서쪽에 위치한 마포는 조선의 밥줄 역할을 했다. 당시 마포나루는 선박을 통해 삼남(三南;충청 전라 경상) 지역의 곡물이 모이는 물류 중심지였다. 조기 새우젓 등 해산물과 강원도 내륙에서 뗏목 등을 통해 옮겨온 목재나 특산물 등도 이곳에서 거래됐다. 각종 물자와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마포나루터는 엄청난 부자들을 만들어냈다. 조선말까지 이곳에서 객주(客主) 색주(色酒) 당주(堂主) 등으로 불리는 상인들이 떼돈을 벌었고 그 위세도 대단했다.
주요기일제시기에 세워진 용산전화국 터. 신용산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바로 인근에 구한말 군사용 물자를 관장하는 군자감 창고인 강창(江倉)이 있었다. 현재 KT용산 데이터센터를 짓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안영배 논설위원
원효대교 북단의 용산구 신창동 공영주차장 뒤편 구석진 곳에 있는 비변사(조선시대 군사관련 회의 기구) 우물터. 옹달우물으로 불리기도 한다. 안영배 논설위원
당연히 조선 왕조에서도 이곳은 중요한 물류기지였다. 용산 산줄기를 중심으로 서편과 동편에는 각종 창고가 들어섰다. 군사용 물자를 관장하는 군자감 창고인 강창(江倉; 원효로3가 KT원효 부근), 훈련도감 군인들의 급료를 보관하는 별영창(別營倉; 원효로4가 성심여자고등학교 뒤편), 휼미와 대동미를 보관하던 신창(新倉; 효창공원 서북쪽), 관료들의 녹봉을 보관하는 광흥창(廣興倉; 마포구 창전동) 등이 운영됐다. 풍수에서 말하는 ‘수관재물(水管財物:물은 재물을 관장함)’의 전형적인 터였던 셈이다.
● 신용산의 신흥 부촌 원효로
구용산은 일제 강점기에 운명이 바뀐다. 한국에 주둔한 일본군을 지휘하는 총사령부인 한국주차군사령부(韓國駐箚軍司令部)는 용산 동편에 주둔용 군용지와 철도 부지를 영구적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강제 수용했다. 이에 따라 둔지산(현재 국립박물관 뒤편)이 있는 둔지방(조선시대 행정구역; 후암동, 이태원동, 서빙고동 일대)의 390만㎡(118만 평)이 헐값에 일본군의 손에 넘어간다.
한말의 애국지사 황현이 ‘매천야록’에서 당시를 이렇게 기록했다. “왜인들이 숭례문에서 한강에 이르는 구역에 멋대로 점(點)을 쳐서 군용지라는 푯말을 세우고 경계를 정하여 우리나라 사람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부터 그들이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번번이 군용지라는 명목으로 땅을 빼앗아 갔다.”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마을은 물론 둔지산 자락의 수많은 묘들이 이때 파헤쳐졌다. 당시 한성부(현재의 서울시)는 이 지역에 가옥 1176호, 분묘는 111만7308기가 있다고 보고했다. 군용지로 수용되는 과정에서 조상의 묘가 훼손되자 분노한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하지만 국권을 빼앗긴 나라의 백성이 일제를 이길 수는 없었다. 묘 자리를 헤집고 들어선 일제 군기지는 광복 이후 미군기지로 바뀐다.
용산구 한강대로에 있는 용산역. 일제강점기 만주로 진출한 일본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목적으로 세워진 역이다.
일제는 또 이 일대에 기차 정거장(용산역)과 서울철도공작창(용산차량사업소), 다리(한강대교) 등을 설치해 교통물류의 거점지역으로 활용했다. 만주에 진출한 일본군에 보낼 군수물자를 원활히 보급하기 위한 용도였다. 이 때부터 이 일대는 구용산과 구별해 신용산이라 불렸다. 나중에 용산 서쪽지역의 구용산은 마포구라는 새 행정구역으로 편입됐다.
한편 일제는 병영과 철도시설을 짓고 남은 땅을 일본인들에게 나눠줬다. 현재의 원효로 일대가 그곳인데, 이곳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으뜸가는 동네’라는 의미로 ‘모토마치(元町·원정)라고 불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신용산의 신흥 부촌이 탄생했다. 땅의 지운이 마포의 구용산에서 신용산 쪽으로 옮겨진 것이다.
● 세계 물류 끌어들이는 땅 기운
굳게 닫힌 문 뒤가 용산 미군기지다. 안영배 논설위원
용산 미군기지 내에 있는 일본군 감옥. 동아DB
이런 역사를 지닌 용산은 예전부터 외국 군대와 인연이 깊은 지역이다. 13세기에는 고려를 침입한 원군(元軍)이, 16세기 임진왜란 때는 왜군과 명군이, 19세기 임오군란(1882년) 때는 청군(淸軍)이. 20세기 이후에는 일본군과 미군이 이곳을 주둔지로 이용했다.
외국군이 용산에 주둔한 것은 이 땅이 지닌 군사적, 전략적 가치가 컸기 때문이지만 풍수학적으로 볼 때 땅 자체가 이국(異國)을 끌어들이는 기운도 한몫했다.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여드는 용산의 이태원(李泰院)은 ’다른 이(異人)‘들의 태(胎)가 있는 곳이라고 해서 ’이태원(異胎院)‘으로도 불릴 정도다.
용산 앞으로 흐르는 한강 또한 외부의 기운을 끌어들이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원래 수로 교통의 중심인 한강은 강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곳이다. 한강 상류에서는 세곡(稅穀·나라에 세금으로 바치는 곡식) 등을 실은 강상선(江上船)이 물길을 따라 용산까지 내려왔고, 한강 하류에서는 바다와 강을 오가는 강하선(江下船)이 강화도 앞바다에서 만조 때를 기다렸다가 바닷물을 타고 용산까지 거슬러 올라왔다. 지금은 한강 수중보 등으로 만조가 되더라도 바닷물이 김포까지만 올라온다.
바다 즉 해양은 외부의 기운을 끌어들이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본다. 쉽게 말하면 용산은 한양의 내륙 깊숙한 곳에서 외부 세계와 통하는 해양 기운을 끌어들이는 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땅 기운을 잘 활용하면 용산은 세계적 물류와 유통, 금융의 중심지로 우뚝 설 수 있다.
좌절된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미래 청사진.
현재의 용산에서 이런 기운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51만㎡ 규모의 용산차량사업소 부지다. 10여 년 전 추진됐던 ’한강 르네상스‘ 사업에 따르면 이곳은 업무지구로 지정돼 세계적인 랜드마크 건물들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곳을 서민용 아파트 등 주거시설 밀집지역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44만 2000㎡에 달하는 용산 차량철도기지 부지. 정부는 이 부지 일부에 8000채가량의 아파트를 건설할 예정이다.
이 땅은 활용 여부에 따라 서울은 세계적인 경제도시로서 발돋움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가 이곳에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단순히 강남 집값을 때려잡겠다며 서민용 아파트가 잔뜩 들어선 주거용지로만 사용하기엔 아쉬움이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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