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나라가 주택 구입과 보유를 장려하는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신규 주택 분양제도, 최초 구입자에 대한 금융지원, 주택 구입 대출 이자상환액의 소득공제 등을 통해 무주택자의 자가 구입과 보유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1가구 1주택 보유는 장려하는 반면 다주택 보유에 대해서는 세제와 규제를 통해 불이익을 준다는 점이 다른 나라들과의 중요한 차이다.
◆ 다주택 보유, 왜 억제하나
다주택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이들이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박탈한다는 인식에 기초한 것 같다. 어느 도시에 100만가구가 있고 주택도 100만채가 있어 모든 가구가 거주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100만가구 중 50만가구는 집을 두 채씩 소유하고 있고 나머지 50만가구는 남의 집에 세를 들어 있다고 하자. 즉 주택보급률은 100%인데 자가거주율이 50%인 상황이다. 이제 2주택 보유자들에 대해 무거운 세금을 물려 이들이 거주하고 있지 않은 집을 매각하게 하면 무주택자들이 자가를 보유할 수 있게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집을 살 의사나 능력이 없는 가구가 상당수 있을 것이다. 집을 두 채 보유하려는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현재 100만가구 주택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주택 공급은 고정된 수의 주택을 나눠 갖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신규 자본의 투입 여부에 따라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 있다. 집을 두 채 보유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자발적·비자발적 무주택 가구들이 거주할 집이 공급되는 것이다.
만일 구입 능력을 가진 무주택자가 충분하지 않고 일부 가구가 집 두 채를 보유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된다면, 신규 주택 공급이 줄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노후화되는 주택 재고를 채울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무주택자들이 거주할 주택이 부족해진다. 다주택 보유 억제 정책으로 임대시장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 다주택자의 또 다른 이름, 민간임대주택 공급자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가구의 60~70%가 자가에서 거주하고 나머지는 임대주택에 거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현재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가구의 비중은 평균 23.1%,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를 내는 임대주택(사회주택, 공공임대주택 등)에 거주하는 가구의 비중은 5.7%다. 주요 7개국(G7)의 경우 민간임대주택 거주 가구 비중이 이보다 훨씬 높다.
민간임대주택 공급자는 개인과 기업으로 구분되는데 많은 나라에서 소수의 임대주택을 임대하는 개인(mom and pop landlords)의 비중이 매우 높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6개국의 주택임대시장과 정책을 비교분석한 브루킹스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임대사업자 중 개인의 비중은 독일이 50%, 스페인과 일본은 절반 이상이고 프랑스의 경우 민간임대주택의 93.5%가 개인에 의해 공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자료에는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32%가 민간임대주택, 5.0%가 공공임대주택, 3.8%가 무상주택에 거주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민간임대주택 거주 가구는 대부분 개인 다주택자들이 공급하는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2019년 주택 소유 현황 통계에 따르면 한 채를 소유한 가구가 주택 소유 가구의 72.3%, 두 채를 소유한 가구가 20.1%, 3채를 소유한 가구가 4.8%, 4채 이상 소유한 가구가 2.8%다. 즉 다주택자 대부분이 직접 거주하는 주택 외에 1채 또는 2채를 더 소유하고 있다.
◆ 다주택자들은 어떤 주택을 보유하고 있나
그렇다면 다주택 개인들이 소유한 임대용 주택은 어떻게 구성돼 있을까. 주택 소유 현황 통계에서는 주택 유형별 다주택 보유 내역 자료를 발표하지 않는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는 자신이 거주하는 주택 이외의 소유 부동산 내역에 대한 질문이 있으나 원 자료는 공개되지 않는다.
따라서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일부 신규 등록 주택 통계를 토대로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임대주택의 구성을 유추해 볼 수밖에 없다. 자료가 공개된 2019년과 2020년 1분기에 등록된 임대주택 총수는 20만7000채였다. 그중 오피스텔이 7만1000채(34.6%)로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다가구 4만9000채(23.8%), 아파트 4만1000채(20.1%), 다세대주택 2만9000채(14.3%), 단독주택 1만채(4.9%), 기타 3000채(1.5%) 순으로 다주택 보유 임대사업자들이 등록한 임대주택은 대부분 비아파트였다. 또한 공시가격 자료가 있는 아파트 중 공시가격 3억원 미만이 67.6%이고 6억원 이상은 6.4%에 불과해 대부분이 저가 아파트다. 물론 이 수치가 전체 다주택자 보유 주택에 적용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다주택자에 대한 정책의 효과에 대한 시사점은 분명하다.
◆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 효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0년 이래 집합건물 소유권이전등기 건수로 측정한 아파트 거래량과 실거래 가격은 함께 상승하거나 감소하는 모습을 보인다. 현 정부가 2018년 양도세 중과세 시행을 앞두고 한시적 감면을 시행한 시기에 서울의 아파트 소유권 이전 등기 건수는 예년 대비 20% 증가했지만 감면 종료 이후(중과 실시 5개월 이후) 가격은 급등했다. 2020년 2차 한시 감면 시기에는 등기 건수가 7% 증가하는 데 그쳤고 감면 종료 직전인 2020년 6월부터 주택가격이 급등했다. 분석의 결론은 양도소득세 중과로 가격과 거래량의 변동폭이 확대됐으며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의 한시적 완화로 매물이 증가해도 가격 안정 효과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양도소득세 중과로 다주택자들에 의한 증여가 늘었다.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기간 중에 수도권 아파트 거래 중 증여의 비중과 전체 증여 거래 중 40대 이하가 수증자인 거래의 비중이 높아졌다. 지방소득세율을 포함한 2주택자와 3주택자 양도소득세 세율이 각각 71.5%와 82.5%로 증여세율 50%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다주택자 중과가 가져온 또 다른 결과는 이른바 '똘똘한 한 채' 현상이다. 다주택에 대한 중과세 제도하에서는 기존 다주택자뿐 아니라 신규 구입 가구, 집을 넓혀 가려는 사람들도 구입할 수 있는 가장 비싼 주택 한 채를 구입하거나 보유할 것이고 이에 따라 고가 주택의 가격이 더 큰 폭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KB국민은행이 발표하는 분위별 주택가격 추이를 보면 2017년 5월에는 서울 아파트 1분위 평균 가격이 2억8436만원, 5분위 평균은 11억9528억원으로 그 격차가 9억1092만원이었다. 2021년 10월에는 1분위 평균이 5억6336만원, 5분위 평균이 23억673만원으로 격차가 17억4337만원으로 대폭 확대됐다.
◆ 등록임대사업자 제도 철회 효과
집권 초기에 다주택자들의 임대주택 공급 기능을 인정해 각종 혜택을 제공하며 등록을 장려했던 현 정부는 시행 2년도 되기 전에 이 제도를 백지화했다. 등록임대사업자들의 주택 구입으로 집값이 더 올랐으므로 제도를 폐지해 매물을 늘리고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의도에서였다. 2020년 8월에 아파트와 4년 단기 비아파트 등록임대 제도를 전격 폐지한 직후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020년 말까지 46만8000가구가 자동 등록말소되고 이 중 일부가 매물로 나와 주택가격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피력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부분의 등록임대주택이 수요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비아파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주택자들이 등록임대주택을 처분하더라도 시장에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저가의 비아파트를 구입해서 유주택자가 되면 신규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무주택자들이 구입을 꺼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부총리의 기대가 실현됐다는 증거는 없는 것 같다.
◆ 임대시장서 다주택자의 역할 인정해야
이상의 분석은 주택시장의 현실과 작동 기제를 인정하지 않고 1가구 1주택 달성이라는 규범을 앞세운 다주택 보유 억제 정책이 집값 안정이나 자가보유율 증대에 기여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 결과는 놀랍지 않다.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들이나 법률을 입안하는 국회의원들 자신이 다주택 보유자 또는 무주택자라면 어떻게 행동할지를 생각해 보면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집을 세 채 가진 사람이 양도소득세를 82.5% 내고 세 번째 주택을 매각하기보다는 자녀에게 증여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다주택 보유자들이 내놓은 반면에 어떤 사람은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생각해서 누군가가 매물로 내놓은 아파트를 신고가에 기꺼이 살 수도 있는 것이다.
2020년 우리나라의 자가보유율은 60.6%다. 무주택 가구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하는 정책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집을 살 능력이 없거나 의사가 없는 많은 가구들은 개인들이 공급하는 임대주택에 살게 돼 있다. 사실 민간임대주택은 외형적으로 특별히 구분돼 있지 않다. 한 아파트를 소유자가 직접 거주하면 자가주택이고 세를 놓으면 임대주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 주택 생산이 늘어야 민간임대주택 공급도 늘 수 있다. 다주택 보유에 대한 규제와 중과세는 장기적으로 임대주택 공급을 어렵게 만들어 임차인들의 선택 기회를 제한하고 임대료 상승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많은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자가 보유를 장려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다주택 보유를 강력하게 억제하지 않고 임대소득에 대해 정상적으로 과세하며 임차인의 주거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들을 두고 있는 이유다.
따라서 다주택자의 임대주택 사업자로서의 역할을 인정하고 등록임대사업자에 대해 임대소득을 정상 과세하되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 중과세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는 투기 억제를 위해 다주택자에 대해 양도소득세 중과세를 도입했고 현 정부는 이를 한층 더 강화했지만 이명박·박근혜정부는 임대주택 공급 기능을 인정해 중과세제도를 유예 또는 폐지한 바 있다. 종부세의 경우 개인이 보유한 주택의 합산 가액에 대해 과세되는데 다주택자에 대해서는 보유 가구 수에 따라 중과세하고 있다. 일례로 서울 송파구에 다세대주택 12채(공시가 합계 약 23억5000만원)를 보유한 사람이 내야 할 보유세는 4816만원으로, 비슷한 가액의 강남구 아파트 한 채(공시가 약 23억7000만원)에 대한 보유세 1313만원의 3.7배에 달하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부담 가능한 임대료의 임대주택 공급을 어렵게 하는 사례다. 현 정부의 시도처럼 단순히 양도세율 추가 인상의 시행을 이연하는 수준을 넘어서 다주택자 중과세, 임대소득 과세, 임대차보호법 등에 대한 종합적인 개선 방안을 하루빨리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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