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디벨로퍼는 토지 매입부터 기획, 설계, 금융, 분양에 이르는 개발 사업 전 과정을 진두지휘한다. 개발 사업 특수성 탓에 손쉽게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린다는 억측도 적지 않다. 부동산 디벨로퍼와 개발 사업에 관한 오해와 진실은 무엇일까.
▶천문학적 수익 어떻게 가능?
▷다중 레버리지로 수익률 높여
부동산 개발 사업 하면 ‘대박’ ‘일확천금’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퍼뜩 떠오른다. 이는 엄밀히 따져보면 왜곡된 측면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는 다중 레버리지가 동원된다. 첫째 기본적인 차입 레버리지다. 쉽게 말해, 타인 자본을 일부 껴 자본금을 구성해 사업을 벌일 때다. 가령 자기자본으로 자본금 100원짜리 A사를 세워서 100원 순이익을 남겼다고 치자(이자 비용 등은 무시). 이 경우 자기자본이익률은 100%다. 타인자본 50원과 자기자본 50원으로 똑같이 자본금 100원을 투자해 100원을 남겼다면, 자기자본 50원으로 100원을 번 것이므로 자기자본이익률은 200%로 단숨에 급등한다. 자본금 100원을 투자해 100원을 번 것은 같지만 타인자본 비율에 따라 이익률은 천양지차다.
둘째, SPC(Special Purpose Company)라는 특수목적회사를 낀 레버리지다. SPC는 부동산 개발 사업 수익률을 따질 때 결정적인 레버리지 장치로 작용한다.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SPC를 만드는 것은 관행적인 금융 기법이다. 가령 A사가 직접 금융으로 자금을 조달해 부동산 개발 사업을 벌여 막대한 성공을 거뒀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A사의 또 다른 사업에서 문제가 발생해 기업 전체가 부실해지면 부동산 개발 사업에 돈을 대준 금융사는 원리금을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부동산 개발 사업은 여러 관계 기업이 소규모 자금을 출자해 SPC를 만들고 여기에 부동산 자산을 넘긴 다음, 이 SPC가 보유한 개발 프로젝트의 현금흐름을 기반으로 대출을 일으켜 개발 단계에 따라 순차적으로 원리금을 회수한다. 이 경우 A사가 파산하더라도 SPC에 묶여 있는 자산을 유동화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이런 식으로 최초 대출기관인 금융사의 원리금 회수 리스크를 제거하는 작업을 ‘구조화 금융’이라 부른다. 대부분 부동산 개발 사업은 이 같은 SPC를 매개로 자금 조달이 이뤄진다. 이 SPC는 오로지 개발 사업을 위해 설립된 ‘페이퍼컴퍼니’로 사업 종료 시 배당가능이익을 모두 나눠 준 뒤 해산된다.
SPC가 레버리지로 작용하는 구체적인 원리는 이렇다.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려면 토지부터 매입해야 한다. 감정가 100원짜리 토지를 담보로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사업 자금을 대출받으려면 LTV(담보대출비율) 한도 이상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부동산 개발 사업의 미래 현금흐름을 분석해 대출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00원짜리 토지를 매입한 뒤 100원을 들여 건물을 짓고 이를 300원에 분양하는 개발 사업이 있다. 이 사업의 미래 현금흐름인 300원을 기반으로 대출을 받는 것은 토지 감정가 100원을 근거로 대출을 받는 것보다 레버리지 효과가 월등하다.
셋째는 선분양 효과다. 최근 후분양 도입 등을 두고 여러 논란이 있지만 아직 국내 부동산 개발 사업은 대부분 선분양으로 이뤄진다. 과거 민간 부문에서 주택 공급을 촉진하려는 목적에서 도입됐다. 토지를 매입하고 대규모 주택을 건설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지만 수십 년 전 국내 건설사 대부분은 자금력이 열위였다. 이 때문에 건설사는 착공과 동시에 분양을 하고 입주 예정자에게 계약금, 중도금 등으로 주택 가격의 80%가량을 미리 받는다. 개발 사업에서는 이런 식으로 입주 예정자가 미리 낸 돈을 ‘지렛대’ 삼아 건설 비용을 충당할 수 있어 레버리지 효과가 높다.
▶페이퍼컴퍼니가 이익 독식?
▷납입자본금에 관한 오해
‘자본금 수십억원에 불과한 페이퍼컴퍼니가 수십, 수백 배 개발이익을 독식한다’는 세간의 편견은 개발 사업의 특수한 금융 구조에서 비롯됐다.
구체적으로 풀어보면 이렇다. 가령 SPC의 한 형태로 대규모 개발 사업에 주로 활용되는 것이 PFV(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roject Financing Vehicle)다. PFV는 통상적인 개발 사업의 SPC보다 설립 요건이 다소 까다롭다. 소규모 개발 사업에 쓰이는 SPC의 최소 납입자본 요건은 5000만원이다. PFV는 최소 자본금 50억원으로 금융기관이 5% 이상 출자해야 한다. 이때 개발 사업 관련 자산관리는 별도 AMC(자산관리회사)에서 맡는다. AMC는 PFV에 출자한 법인 또는 그 법인이 설립한 법인이어야 한다. 자금관리 업무 역시 별도 신탁사가 맡는다.
소규모 SPC는 자본금 문턱이 낮은 반면, 배당과 사업소득 등에 이중 과세를 적용받는 것이 단점이다. 반면, PFV는 자본금 등 설립 요건이 다소 까다롭지만 세제 혜택이 뛰어나다. PFV는 배당가능이익의 90% 이상 배당 시 이를 법인세 과세표준에서 제외해준다. 이때 SPC와 PFV 모두 최소 자본금 요건만 충족시킨 채 설립된다. 이들은 개발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설립된, 말 그대로 ‘페이퍼컴퍼니’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발 사업 규모가 조 단위라고 해서 PFV의 납입자본금이 이에 비례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최소 요건인 50억원만 채워도 아무 문제가 없다.
▶디벨로퍼 규모는 작다?
▷대기업 계열·초대형 IB 두각
흔히 부동산 개발 사업을 벌이는 디벨로퍼를 자본금, 인력 등에서 소규모 회사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는 하다. 국내 부동산 개발사로 등록하려면 일정 요건을 갖춰야 한다. ‘부동산 개발업의 관리 및 육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일정 규모(건축물 연면적 3000㎡·토지 5000㎡) 이상의 부동산을 개발하려면 자본금(법인 3억원·개인 6억원), 사무실, 부동산 개발 전문 인력(상근 2인 이상) 등 3가지 요건을 갖춘 후 부동산 개발업에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한다.
최근에는 개발 사업이 고도화하면서 대기업 계열 디벨로퍼 진출이 늘어나는 추세다. ‘공공 주도 → 민·관 협력 → 민간 주도’로 개발 방식이 점차 변화하면서 민간 디벨로퍼 역할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기업 계열 디벨로퍼로는 SK디앤디, 롯데자산개발, KT에스테이트 등이 꼽힌다. HDC현대산업개발, DL이앤씨(옛 대림산업)도 시공 사업을 하면서 개발 사업 전 과정을 도맡는 디벨로퍼 역할을 점차 키우는 추세다.
금융권도 적극적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대체 투자 등 포트폴리오 다각화 전략의 일환으로 부동산 금융 사업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본금이 넉넉한 초대형 IB를 중심으로 개발 사업의 토지계약금 대출을 비롯해 프로젝트파이낸싱 후순위 투자, PFV 출자 대여, 후순위 담보 대출, 사업비 대출, 보통주 투자 등에 나선 것이 단적인 예다.
땅 짚고 헤엄치며 돈 번다?
열 번 성공해도 한 번 실수로 패가망신
흔히 디벨로퍼를 두고 자기 돈 없이도 인맥과 아이디어만으로 쉽게 떼돈을 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돈도 없이 개발 시장에 들어와서 땅값만 높이다가 분양에 성공하면 돈만 챙기고 빠진다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적잖은 것이 사실이다. 정말 그럴까.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개발 사업에 뛰어들어 분양 단계까지 가는 디벨로퍼는 전체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을 것으로 추산한다. 분양까지 겨우 성공했더라도 입주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해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땅 짚고 헤엄치는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 아니라 잘못되면 투자금을 날리는 것은 물론 법적 책임까지 질 수 있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셈이다.
실제 모 중견 건설 업체 출신 디벨로퍼 B씨는 개발 사업이 수포로 돌아간 뒤 여기저기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B씨가 2건의 주거형 오피스텔을 성공적으로 분양했을 때만 해도 고생 끝에 낙이 오나 싶었다. 옛 직장 동료들도 월급쟁이에서 벗어나 크게 성공했다며 그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오피스텔 입주 시기에 문제가 터졌다. 분양받은 계약자들이 입주를 하지 않아 몇 개월이 지나도 입주율이 20%를 밑돌았다. 계약자 대부분은 중도금 무이자 대출로 오피스텔을 분양받은 상황. 중도금과 잔금이 들어오지 않아 건설사에 시공비를 주지 못하고, 은행 이자는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부동산 강세장 분위기에 휩쓸려 분양받은 사람들은 막상 입주 시기가 되자 태도를 바꿨다. 주변 생활 기반이 없는 나 홀로 오피스텔 투자로 돈을 벌기 힘들 것 같다며 입주를 하지 않고 중도금, 잔금 처리도 거부했다. 미입주 상태가 계속되자 이번에는 기존 입주자들이 B씨를 고발했다. 관리사무소는커녕 청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건물 상태가 엉망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건설사는 시공비를 내놓으라고 난리였고, 은행은 이자를 내지 않으면 건물을 경매에 부치겠다고 경고했다. 압박에 견디다 못한 그는 결국 잠적을 선택했다. 한때 잘나가던 디벨로퍼 중에는 B씨 같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한 번 성공의 단맛을 본 디벨로퍼가 돈을 벌었다고 은퇴하는 일은 거의 없다. 부동산 개발은 마치 마약과도 같아서 한 건을 성공하면 더 큰 건에 발을 담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과거 벌었던 돈을 다 쏟아붓기도 한다. 실패했을 때 책임져야 하는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열 번 성공해도 한 번 삐끗하면 그대로 망하는 게 이 바닥이다.” 전직 디벨로퍼 C씨 토로다.
▶디벨로퍼는 비리의 온상?
▷실력파 디벨로퍼 잇따라 등장
뒷돈, 접대, 유착….
디벨로퍼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다. 과거 실력도 없고 가진 것은 인맥뿐인 소규모 디벨로퍼가 난립하면서 만들어진 인식이다. 물론 부동산 개발 사업 자체의 특수성도 감안해야 한다. 토지 매입, 인허가, 심의, 시공, 분양 등이 빠르게 진행될수록 사업 수익성이 커지기 때문에 전 과정에서 시행사와 시공사, 투자사의 다양한 인맥이 동원된다. 단순히 수익을 더 내고 덜 내고가 문제가 아니라 교과서적으로만 접근한다면 개발 사업 자체가 십중팔구 엎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알 박기는 불법이지만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사업을 시작도 할 수 없는 땅이 태반이다. 인허가도 마찬가지다. 법에 정해진 제출 서류가 있지만, 인허가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이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상당하다. 심의에서는 매번 심의위원 눈치를 봐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문제가 한 번 발생해 삐걱거릴 때마다 이자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로비는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다만 요즘에는 과거와 같이 대놓고 뇌물을 요구하는 풍토는 많이 사라지는 추세다. 메이저 건설 업체에서 개발 사업을 담당하던 실력파 직원들이 디벨로퍼로 나서거나 대기업 계열사가 전문적인 디벨로퍼 역할을 하는 등 개발 업계가 한 단계 레벨업되면서 자정 작용을 거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력을 축적한 대형 디벨로퍼 등장도 긍정적인 변화다. 해외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하는 디벨로퍼가 속속 등장하면서 국내 부동산 개발 업계에도 선진국형 디벨로퍼 문화가 점차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과거 디벨로퍼들은 땅 매입 역할만 하고 나머지 업무는 시공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소위 기름칠을 하기 위해 로비에 더욱 매달리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반면 요즘 잘나가는 디벨로퍼는 이론과 실전 경험을 두루 갖춘 경우가 대부분이다. 디벨로퍼가 개발 전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불법적인 일로 인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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