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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값을 아십니까]③ “골조 세운 건물 층수 낮추라니”… 상업지역서도 인정받기 시작한 일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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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부산 진구 개금동에 건설 중이던 49층짜리 주상복합의 공사를 중단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주상복합이 들어서면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일조권을 침해 당한다는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부산지법은 아파트 주민들이 낸 공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일부 동을 13~20층까지만 짓고 그 이상의 건축 공사를 금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판결대로라면 계획된 건물의 절반 이상을 짓지 못하는 셈이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해당 주상복합 부지가 상업지역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건축법 제61조에서는 건축물 사이에 일정 수준 이상 이격 거리를 두게 해 햇빛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지킬 수 있게 돼있지만, 이 법 조항은 지금까지 전용주거지역이나 일반주거지역 안의 건축물에만 적용되는 것이 통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도시와 사람 이승태 변호사는 “상업지역은 상업이나 업무를 위한 지역으로 언제든 고층 건물이 신축될 것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일조권 침해 주장을 전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최근 주상복합아파트 등이 생기면서 상업지역의 일조권도 고려대상으로 편입해야 한다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서울 강남 도곡동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 전경.
 
서울 강남 도곡동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 전경.

◇ 건물주·시행사 “법 지켜 짓는데도 문제 된다니”

2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준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을 중심으로 일조권 분쟁이 되풀이되고 있다. 과거 준주거지역이나 상업지역은 일조권 침해에 대한 제한을 받지 않는 것으로 인식됐다. 당연히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대한 건물을 최대한 높이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법원이 지나친 일조권 침해에 대해선 제동을 거는 방향으로 판결을 내리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주상복합 아파트에는 주거시설이 대규모로 들어간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해 법원도 상업지역이라고 해서 일조권을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행사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건축법을 모두 준수했는데 일조권 피해 소송을 피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분양을 완료하고 착공에 들어갔는데 공사금지 가처분 소송이 들어온다거나 골조 공사를 모두 완료한 상황에서 소송이 들어오면 시행사는 합의에 나설 수 밖에 없고 그 비용을 손실처리하는 수 밖에 없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이미 수분양자가 있는데 소송 경과에 따라 층수가 삭감되면 그 부분에 대한 배상은 요즘 같은 부동산 시장 급등기에 정말로 골치가 아파진다”면서 “건물 골조가 다 올라가기 전까지 소송이 없으면 가슴을 쓸어내리는 수준”이라고 했다. 일단 건축물이 완성된 후에는 해당 건물로 인해 일조권 침해가 인정된다고 해도 건축물의 철거 명령 등이 불가능하다.

또 다른 시행사 관계자는 “공사가 금지되면 이자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차라리 분쟁을 빨리 해결하는 편이 낫다”면서 “최근 사례를 보면 신축공사 이후에 일조권 피해 소송이 늘 따라왔기 때문에 아예 비용을 예상하고 있는 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준주거지역의 용적률을 700%까지 높이고, 동시에 일조권 확보를 위한 규제도 현재 절반 수준으로 완화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고밀화 개발과 일조권 침해 논의가 맞물려 진행되면 좋지만, 현재는 집값 안정을 위한 고밀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라 앞으로 일조권 침해 분쟁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 우리나라 같은 곳 없다지만 해외엔 예방에 더 초점

이와 같은 분쟁은 해외에도 있지만, 우리가 유독 심한 편이다. 일본 정도가 비슷하지만 우리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일본의 경우 건축물이 인근 건물에 드리우는 그림자까지 규제(일영규제)할 정도로 일조권 보호에 적극적이다. 일영규제란 중·고층 건축물이 근접한 부분에 생기는 그림자의 시간을 규제하는 것으로 1960년대에 근간이 마련됐다. 동짓날을 기준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북해도는 오전9시부터 오후3시)사이의 일조시간 확보를 위해 일영시간을 규제한다.

일본에서는 신축건물을 지을 때 새 건물이 들어선 것을 가정해 인접한 건축물의 일영시간을 측정한다. 각 자치단체별 조례에서 지정하는 시간 이상의 그림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축건축물의 층고를 정한다. 기존 건축물의 대지를 1.5m∼4m 높인 수평면이 신축건물에 의해 조례에서 지정하는 시간 이상의 일영이 발생하면 안 된다.

하지만 일본은 지진 등의 위험으로 초고층 건물을 우리만큼 빈번하게 짓지 않는다. 동경과 북해도 정도만 우리나라보다 일조권 분쟁이 많고, 나머지는 일조권 분쟁이 많지 않다. 도쿄 등 일부 대도시에만 고층 건물이 몰려있을 뿐, 국토 전체에 초고층 공동주택과 건물이 들어선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 등은 일조권 개념이 크게 부각되지 않은 편이다. 국토가 넓어 타인의 일조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또 적도에 위치한 나라나 중동 등 열대성 기후의 국가에서는 일조권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더운 나라에서는 냉방비를 줄이는 것이 건축물의 경제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햇빛을 받을 권리 보다 건축물 향의 각도를 통해 햇빛을 덜 받도록 하는 것이 연구대상이라는 것이다.

이승태 변호사는 “춘하추동 4계절이 뚜렷한 나라인 데다 인구 밀도가 높고 개발 욕구가 강한 나라라서 일조권 분쟁이 많은 것”이라면서 “시행사들은 이제 일정 부분 배상을 하고 개발에 나선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고 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우선 건축 전에 일조권 침해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이 좋다. 수인한도를 초과하는 일조권 침해 가구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건축 설계에 나서야 배상액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층수를 낮추는 것이 분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건물 방향을 틀어서 설계에 나서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한 건축사는 “예를 들어 일조권 침해 시뮬레이션 결과를 감안해 건물 각도를 틀어 설계를 한다면 수인한도 초과 가구가 50가구인 것을 11가구 정도로 줄일 수 있고 배상액에 큰 차이가 날 것”이라고 했다.

https://biz.chosun.com/real_estate/real_estate_general/2021/09/28/YD4RUA7HHRAPNGSBJNCLBVUM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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