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들이 좋은 기억만을 간직한 채 돌아가면 됩니다.” 기업들의 오프라인 ‘공간 활용법’이 달라졌다. 상품 판매가 아닌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점포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점포 내에서 얼마나 매출이 발생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고객들이 매장에 놀러와 즐겁게 체험하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 고객과의 ‘교감’을 극대화해 기업 이미지와 인지도를 제고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쌓인 긍정적인 이미지는 결국 기업의 제품 판매 증대로 이어지는 이른바 ‘선순환’ 효과를 노린 고도의 전략이다.
휴일인 8월 29일 중부고속도로 남이천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양옆에 수풀이 우거진 국도를 약 5분 정도 지나니 회색빛 벽돌 건물이 보였다. 시골 길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느낌의 이 건물은 시몬스가 2018년 9월 문을 연 ‘시몬스 테라스’라는 이름의 복합 문화 공간이다. 올해로 오픈 3년째를 맞은 이곳은 누적 방문자 수 30만 명을 넘어서며 이천의 ‘명소’로 불린다.
내부에 들어서니 일요일을 맞아 연인과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이곳을 찾아 구경하고 있었다. 침대를 진열하고 판매하는 ‘쇼룸’도 있지만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 장소는 이곳에 마련된 다양한 전시 공간이었다. 1층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매트리스 랩’이다. 시몬스의 기술력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기 위해 마련된 장소다. 특히 ‘롤링(rolling)’ 기계가 침대의 스프링 강도를 테스트하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해 눈길을 끌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신기한 듯 이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시몬스라는 브랜드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도 인상적이었다. 시몬스가 100여 년 전 침대를 처음 만들 때 활용했던 오래된 도구들뿐만 아니라 잡지에 실었던 광고들까지 빼곡하게 전시해 놓았다. 약 한 시간 정도 내부를 둘러보고 나니 어느새 ‘침대는 시몬스’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저절로 각인되는 듯 했다. 시몬스, 공간 마케팅 효과…업계 1위 넘봐기업들에 오프라인 공간이 ‘마케팅의 장’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가장 큰 배경은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 갖는 ‘홍보 효과’ 때문이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색적인 공간을 방문해 사진을 찍은 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올리는 것은 이제 소비자들의 일상이 됐다. 광고 수단으로서의 SNS의 영향력이 막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인증 샷’을 유도하는 특별한 오프라인 공간을 통해 소비 주체로 떠오른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킬 수 있다.
시몬스 역시 이 공간을 만들면서 이런 부분을 노렸다. 시몬스 침대 관계자는 “어떻게 하면 브랜드를 더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내놓은 답이 바로 고객들의 경험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공간을 구성한 시몬스 테라스”라고 강조했다.
전략은 적중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저절로 입소문을 탔다. 현재 시몬스의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수는 14만 개를 넘어섰다. 침대 브랜드 중 1위다.
높아진 인지도는 시몬스 매출 상승의 원동력으로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몬스의 매출액은 경쟁사 대비 빠르세 상승하며 어느덧 업계 1위를 넘보고 있다. 공간 마케팅의 대표 성공 사례로 주저 없이 시몬스를 꼽는 이유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시몬스는 추가로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을 선보이기로 했다. 9월 경기도 의왕에 문을 열 예정인 ‘롯데프리미엄아울렛 타임빌라스’에 호텔을 콘셉트로 한 오프라인 점포 문을 열 예정이다.
브랜드의 이미지를 제고하거나 변신을 시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프라인 점포를 활용하는 기업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마케팅 전문가인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의 말이다.
“오프라인 점포를 고급스럽게 꾸며 그 공간을 소비자들이 경험하게 하면 자연히 해당 브랜드 역시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부각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진취적인 이미지로 변신을 꾀하는 기업들 역시 ‘젊은 감성’을 입힌 점포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각인시킬 수 있다.”
오뚜기도 이런 기업들 중 한 곳이다. 오뚜기는 지난해 말 서울 강남 선정릉역 인근에 ‘롤리폴리 꼬또’라는 레스토랑의 문을 열었다. 오뚜기를 의미하는 ‘롤리폴리(rolypoly)’라는 단어에 ‘잘 구워진’, 혹은 ‘벽돌로 만든 공간’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꼬또(cotto)’를 합친 의미다.
이름처럼 좁은 골목 주택가 사이에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이 멀리서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롤리폴리 꼬또는 분식(라면·카레)과 양식(피자·파스타) 등을 판매 중이다. 대부분의 음식을 오뚜기에서 생산한 제품을 활용해 조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오뚜기, 이미지 변신 위해 공간 출점8월 31일 점심시간을 활용해 직접 이곳을 찾아 파스타를 주문해 봤다. 음식 맛이나 플레이팅은 일반 레스토랑과 비교해 크게 특별한 것이 없었다. 단 직원이 음식을 건네줄 때 어떤 오뚜기 제품으로 파스타를 조리했는지 알려주는 ‘레시피’ 설명서를 제공해 줘 인상적이었다. 제품 구매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고급 레스토랑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롤리폴리 꼬또만의 특징이다. 내부에 잘 가꿔진 정원도 있는데 유명 작가들이 직접 만든 조형물도 전시해 놓았다. 아직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지 않은 공간도 있었다. 매장 관계자는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도 조만간 문을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뚜기가 이 같은 매장을 열게 된 이면에는 브랜드가 가진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 깔려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오뚜기는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것이 최대 장점이지만 한편으로는 브랜드가 갖고 있는 진취적인 이미지가 이런 선입견에 가려져 묻혀 버리는 것이 아쉬웠다. 롤리폴리 꼬또라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 젊은층 소비자들에게 오뚜기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담겼다는 설명이다.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체험 공간인 ‘현대 모터스튜디오’를 지속적으로 늘리며 고객 접점 확대와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현대차는 현재 서울·경기·부산·해외(중국 베이징, 러시아 모스크바) 등을 포함해 총 6곳의 현대 모터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다.
벤츠·아우디·BMW 등의 전시장이 즐비해 ‘수입차의 메카’로도 불리는 서울 강남 도산대로 한복판에 자리한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은 주말이 되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강남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며 그 효과를 톡톡히 내고 있다.
이곳이 판매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알아챌 수 있다. 차량 대신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1층 공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2층도 갤러리와 함께 고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커피숍을 운영 중이다. 1층과 2층의 전시들은 수시로 바꿔 진행한다. 지속적으로 고객들의 발길을 이곳으로 이끄는 요인으로 꼽힌다.
판매 중인 자동차는 3~5층에 전시돼 있는데 직원들이 고객에게 먼저 말을 걸며 차량 구매를 권유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차량 내·외부를 둘러볼 수 있다. 가족 고객들을 겨냥해 아이들을 상대로 교통 안전 교육을 진행해 주는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고 재활용품을 활용한 ‘친환경 굿즈’도 판매하고 있다. 가족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해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향후 나아갈 방향도 모터스튜디오를 통해 고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를테면 가장 최근에 부산에서 개관한(올해 4월) ‘모터 스튜디오 부산’에서는 현재 ‘로봇’을 주제로 한 전시를 진행 중이다.
현대차는 내연기관차를 넘어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한 바 있다. 이 장소를 활용해 미래 기술에 대한 방향을 엿볼 수 있는 전시를 계속 이어 갈 계획이다. 현대 모터스튜디오를 통해 소비자들의 현대차에 대한 이미지를 계속해 변화시켜 나간다는 방침이다. “브랜드 경쟁력 위한 오프라인 공간 필수”그동안 오프라인 매장이 없었던 기업들도 이런 효과에 주목해 최근 잇달아 공간을 활용한 마케팅을 전개해 눈길을 끈다. SK매직은 서울시 강동구 길동에서 ‘잇츠매직(it’s magic)’이라는 체험형 공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SK매직 관계자는 “가전제품은 고객 경험이 중요한데 SK매직은 대리점 없이 전자 제품 전문점에 입점하는 형태로만 소비자들과 만나다 보니 기능을 알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잇츠매직 내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방문자들의 인증 샷을 겨냥한 ‘포토 스폿’이다. 자연 경관을 담은 초대형 디스플레이 앞에 인공 연못과 의자를 배치해 이곳을 꾸몄다.
곳곳에 안마의자·공기청정기·정수기·인덕션 등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게 전시했다. 고객들이 오롯이 공간을 즐기도록 하기 위해 직접 판매하지는 않는다.
문화센터처럼 다양한 강좌나 공연을 개설해 고객들을 그러모으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유명 셰프들이 직접 진행하는 ‘요리 수업’은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수강 예약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예컨대 요리 수업 방식 또한 SK매직 제품을 활용하면서 진행해 고객의 체험을 극대화했다.
이런 흐름은 비단 대기업뿐만이 아니다. 중소·중견기업들 사이에서도 고객과의 접점 확대를 위한 오프라인 공간 출점 러시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두유 생산 업체인 정식품은 서울 중구 회현동에 ‘넬보스코 남촌빵집’이라는 빵집을 오픈하며 소비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기 시작했다.
헤어 제품 브랜드 ‘쿤달(KUNDAL)’을 판매하는 더스킨팩토리도 서울 강남 압구정 한복판에 이국적인 인테리어의 카페를 오픈해 SNS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내부에는 쿤달 제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점포도 운영하며 소비자들의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서용구 교수는 “새로운 소비 권력으로 떠오르는 MZ세대는 특히 경험을 중요시하는 성향을 보인다”며 “온라인 시대가 왔다고 하더라도 이런 MZ세대들의 특성을 고려해 브랜드의 입지를 강화할 만한 특징 있는 오프라인 공간 하나 정도는 필수인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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