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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디자인-가로 골목의 도전

위치는 가로수길 메인 도로 딱 중간쯤. ‘골목’이라는 커다란 글씨를 이마에 박고 선 희고 번듯한 건물이 있다. ‘가로 골목’. 이 신개념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를 응원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골목이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담고 있는 콘텐츠와 구조를 살피고 나면 작명 센스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이 신생 공간이 추구하는 야심 찬 목표가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그 의도가 존중받았으면 한다. (그 비싼) 가로수길, 그것도 대로변에 접한 필지를 묶어 건물을 올린 의도 말이다. 이 프로젝트의 주체인 이지스자산운용과 이를 공간으로 구현한 네오밸류는 ‘지역 상생’을 위해 이 건물을 디자인했다고 한다. 가로수길이라는 고유 명사를 만들어 낸, 하지만 치솟은 임대료로 인해 둥지를 떠나야 했던 창작자들의 기운을 다시 불러모으고 싶다고 했다. 명품 브랜드부터 작은 디자이너 브랜드까지 하나의 거리에 ‘함께’ 있어야만 불멸의 자생력이 생긴다는 믿음 때문이다. ‘대형 브랜드 매장으로 기름진 거리에 소규모 창작자들을 불러모은다?’ 이를 위해 가로 골목은 될성부른 소규모 국내 브랜드만을 입점시킨다. 그것도 낮은 임대료로 말이다. 그 의중에 걸맞게 가로 골목은 옹기종기 매장들이 붙어 있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구멍가게, 화랑, 카페, 바, 옷집이 어깨를 부비면서 공존하던 초기 가로수길처럼. 건물 내부 구조는 인사동에 위치한 ‘쌈지길’을 연상하면 된다. 쌈지길은 인사동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하나의 건축물 안에 채우고 그걸 돌아보는 길을 층층이 냈다. 가로 골목도 마찬가지다. 건축가 김찬중은 건물 안에 자연스런 오르막길을 내서 사람들이 길 옆의 작은 가게들을 구경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상가가 밀집한 2층부터 시작되는 경사로는 건물 내부를 둘러 3층 상가, 4층 카페, 5층 옥상까지 연결된다. 힘들이지 않고 슬슬 오를 수 있는 배려의 길이다. 패션, 뷰티, 디자인, 문구, 펫 숍 등을 끼고 오르다 보면 중간중간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얕은 오르막길 안에 쇼핑, 휴식, 오락이 있다. 알찬 구성이다. 세심한 부대 시설, 세련된 타이포그래피와 픽토그램 등 디자인 디테일도 훌륭한 편이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게 있다. 길을 오르는 동안 선뜻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갈 맘이 들지 않는다는 거다. 자고로 골목 안의 작은 가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와 개성으로 사람을 끌어들이고, 그 에너지와 ‘훈기’로 펄떡대야 하는데 말이다. 아직 그 훈기가 부족한 듯하다. 군데군데 박힌 빈 상점이 그걸 부추긴다. 결정적으로 이 골목이 대체 무슨 골목인지, 소비자가 이해하기 어렵다. 여기가 곱창 골목인지, 찌개 골목인지 잘 모르겠다는 거다. 코로나라는 변수, 오픈 초기라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골목 콘텐츠를 완벽히 채우기 어려웠을 수 있다. 하지만 더 늦지 않게 그 정체성이 드러나 소비자의 발길을 재촉했으면 좋겠다. 이 골목이 디자인이 출중한 아기자기 소품 골목이 될지, 개성 있는 레시피 가득한 청년 밥집 골목이 될지 알 수 없지만. 강력한 ‘큐레이션’의 힘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그 파워가 건물 밖으로 퍼져나가 가로수길에 창의를 더하길.

사실 1평에 2억5000만 원이 넘는다는 금싸라기 땅. 이 땅의 1층을 통 크게 활짝 열어 공공의 길로 만들었다.

 출구와 입구 개념은 없어지고 사람이 흐르는 길이 되었다. 필로티 구조를 활용해 가능한 일이다. 플라스틱 의자들과 식물들, 음료를 파는 소박한 키오스크는 이 열린 길목의 한편에서 사람들을 맞이한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끝나 맘 놓고 광장에 사람이 모여드는 시절이 오면, 이곳이 플리마켓, 바자회, 전시 등으로 왁자지껄하게 채워지길. 그날이 오면, 가로수길과 세로수길을 잇는 이곳, 과거의 가로수길과 현재의 가로수길을 잇는 이곳은 진정한 ‘골목’이 될 것이다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20/05/465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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