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메타버스가 뜨겁다. 메타버스인 로블록스(Roblox), 제페토(Zepetto), 포트나이트(Fortnite) 등이 화두가 되고 메타버스 유관 기업의 주식이 고공행진한다. 사이버 공간과 현실 공간을 융합한다는 메타버스가 가진 경제적, 사회적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부응해서 메타버스는 올해 7월 우리나라 정부가 공개한 한국판뉴딜 2.0에도 포함됐다.
메타버스에 가장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곳 중의 하나가 교육계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학이 더욱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식과 경험의 전달과 습득에 있어 메타버스는 효율성과 효과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다. 디지털의 특성으로 인해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고 이를 통해 누구나 쉽게 고등교육과 평생교육에 접근할 수 있다. 인구감소와 대학의 세계화 등으로 위기에 처한 대학에게 메타버스는 활로가 될 수 있다. 메타버스로 인해 사이버대학은 메타버서티(metaversity)로 발전할 것이며 일반대학은 물리적 공간과 메타버스에 복수의 캠퍼스를 가지는 멀티버서티(multiversity)로 진화할 것이다. 블렌디드(blended) 교육, 역진행 수업(flipped learning), 미네르바 대학식 교육체계 등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메타버스는 대학이 활용할 수 있는 에듀테크(edutech)의 일종에 불과한 것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메타버스는 대학 자체를 변환하고 변혁하게 하는 디지털 전환이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이에 주도하거나 기민하게 적응하지 못하는 대학은 경쟁력을 급격하게 상실할 수밖에 없다.
대학 당국도 이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이광형 총장은 “디지털 인프라와 정통적 인적 자원을 잘 갖춘 대학이 지역적 위치와 관계없이 교육계의 새로운 리더로 등장”할 것이라고 말하며 글로벌 메타버스 캠퍼스를 만들 계획임을 밝혔다. 고려대와 SK텔레콤은 메타버스캠퍼스를 구축하는데 지난달 16일 합의했다. 순천향대는 올해 메타버스 입학식을 거행했고 일부 교양강의를 개설했다. 건국대는 지난 봄 축제를 메타버스인 건국유니버스에서 진행했다. 2016년 하버드 대학은 가장 인기있는 과목을 가상현실 기기를 이용해 MOOC로 공개할 계획임을 밝혔다.
로블록스 등이 최근 청소년에게 새로운 문화 조류가 되었음을 알겠고 일부 대학의 메타버스가 상당히 신선하며 MZ세대의 공감과 관심을 얻을 것이라는 데는 공감이 간다. 그런데 메타버스로 교육개혁을 달성할 수 있을지 비판적 의심이 든다. 더구나 최근 메타버스라고 자부하는 기업이나 메타버스 캠퍼스를 보면 기존의 온라인 회의 플랫폼이나 3D 게임 플랫폼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메타버스 입학식은 사이버 대학의 온라인 입학식과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이고 메타버스 캠퍼스는 3D 게임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비판적 의심이 드는 이유는 메타버스에 대한 정의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조각에 불과한 지도 디지털 데이터를 매매하는 플랫폼인 어스 2(Earth 2)는 스스로를 메타버스라고 분류한다. 메타버스가 인기가 있으나 어중이떠중이가 모두 메타버스로 치장한다. 무엇이 메타버스인지 분명하지 않으니 메타버스 캠퍼스의 구체적 모습과 장점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의심과 비판에 대해 분명한 답을 주기 위해서는 메타버스의 개념과 정의를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메타버스라는 합성어가 탄생한 곳부터 탐색해야 한다.
메타버스는 미국의 SF 작가인 닐 스티븐슨(Niel Stephenson)이 1992년에 출간한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메타버스는 가상현실 게임 플랫폼으로 사용자는 가상현실 공간에서 아바타로 활동한다. <스노 크래시>는 텍스트로 메타버스를 묘사했는데 영화인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은 이를 시각 정보로 묘사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2017년 동명소설인 <레디 플레이어 원>을 영화화했다. 이 영화에서 가상현실 게임 플랫폼인 오아시스(OASIS)가 <스노 크래시>의 메타버스와 같다. <스노 크래시>와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메타버스의 요소는 ‘몰입(immersive)’, ‘플랫폼(platform)’, ‘아바타(avatar)’이다. 2007년 출간된 메타버스 로드맵의 보고서는 메타버스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종합적으로 제시했는데 이를 정리하면 메타버스의 요소는 ‘몰입’, ‘플랫폼’, ‘아바타’다. 이들을 각각 개략적으로 설명하겠다.
몰입이란 가상현실 기기 혹은 증강현실 안경 등으로 현실과 거의 동일한 감각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가상현실 등은 미국 철학자인 길버트 하만(Gilbert Harman)의 ‘통 속의 뇌(brain in a vat)’의 현실 버전에 해당한다. ‘통 속의 뇌’는 일종의 사고실험으로 인간의 뇌를 두개골에서 빼어내 통 속에 넣고 각종 센서를 달아 5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면 그 뇌의 자아는 그가 통 속에 있는 지 육체의 두개골 안에 있는지 ‘알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이 사고실험의 답은 ‘알 수 없다’이다. 이 통 속의 뇌의 현실버전인 가상현실 등은 인간의 경험을 대체하고 강화하며 증강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수강을 하는 학우의 속 눈썹과 미묘한 표정 변화를 가상실재의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게 하며 세포안을 수영할 수 있게 하고 단백질 분자의 구부러짐을 실험하며 어학교육과 직업교육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플랫폼이란 서로 다른 수요를 가진 사용자가 거래를 하는 일종의 시장을 의미한다. 대학 캠퍼스도 일종의 플랫폼이며 전자 상거래 사이트나 동영상 공유 사이트 모두 플랫폼에 해당한다. 메타버스 속의 캠퍼스와 강의실에서 수강, 실습, 경험과 체험 등을 할 수 있게 된다. 가상실재의 플랫폼은 아바타와 같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실제 캠퍼스를 모방해 가상실재 공간에 가져올 수 있으며 공간의 제약 없이 다양한 실험실과 교실을 설정할 수도 있다.
아바타란 분신을 의미한다. 다양한 분신으로 활동할 수 있다. 아바타는 사용자가 다중 정체성을 즐기기 위한 자아의 확장이며 가상실재 공간에서 다른 사용자와의 협력과 대화를 하기 위한 확장이다. 제페토의 아바타 등은 만화 캐릭터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실제의 사람과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정밀한 아바타를 만들기 위한 기술은 이미 등장했다. 이의 대중화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의 분신인 아바타는 본인과 동일한 외모를 가질 수도 있으며 디지털 성형을 통해 키와 피부색을 바꾸거나 눈썹을 진하게 하거나 턱 선을 가다듬을 수 있게 된다. 혹은 인종을 바꿀 수도 있고 성별을 바꿀 수도 있다. 메타버스 속의 아바타는 사용자의 표정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들 세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하면 메타버스란 ‘몰입형 가상현실 기기 등을 이용해 사용자가 아바타로 활동하는 플랫폼’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를 몰입형 메타버스라 하고 이들 세가지 요소를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광의의 메타버스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증강현실 안경을 이용하는 경우 사용자는 아바타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격에 있는 사람이 증강현실 속의 아바타로 등장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물리적 현실과 가상현실은 융합하게 된다. 물리적 공간 캠퍼스와 증강현실 캠퍼스의 융합은 추가적인 정보와 강화 및 증강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리하자면 아바타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아바타는 필수 요소가 아니다.
몰입형 메타버스를 기준으로 하면 광의의 메타버스 중 대다수가 몰입형 메타버스가 아니다. 이들이 3차원 그래픽을 가지고 있어 가상현실 기기에서 구동하거나 혹은 향후 몰입형 메타버스로 진화한다 하더라도 그렇다. 메타버스 사례를 분석했다.
대부분의 메타버스가 몰입형 메타버스가 아니라면 두 가지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첫번째는 몰입형 메타버스가 대중화 시기다. 메타버스 캠퍼스의 대중화 시기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두번째는 몰입형 메타버스의 필수성이다. 광의의 메타버스로도 충분하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몰입형 메타버스 대중화 시기는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 메타버스가 몰입형 메타버스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배경에는 가상현실 기기를 포함한 메타버스 생태계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 생태계가 성숙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애플은 2022년 증강현실 안경을 출시할 예정이며 페이스북과 삼성이 증강현실 안경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등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페이스북의 주커버그(Zuckerberg)는 2019년 한 인터뷰에서 ‘가상현실이 2020년에 대중화되기는 어려워도 2030년 이전에 대중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의 하나인 피더블유씨(PwC)는 2019년 보고서에서 2030년에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의 시장규모가 17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크 투자(Ark Invest)는 2021년 보고서에서 2030년이 되면 증강현실 안경 등이 스마트폰 정도로 대중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관련 기술의 발달 속도가 지수성을 보이고 있어서 이들 전망은 충분히 타당하다. 정리하면 2020년대 중반이 되면 몰입형 메타버스가 본격화될 것이다.
몰입은 인간의 경험을 대체하며 몰입형 메타버스는 디지털 공간에서 학우와의 스킨십을 가능하게 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인데 몰입형 메타버스는 ‘통 속의 뇌’의 현실 버전이다. 몰입형 메타버스는 우리의 인지, 경험 등에 근본적 전환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 자아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몰입기술이 끼칠 영향력이 막대함을 알 수 있다. 앞의 PwC 2019년 보고서의 제목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이다. 경험론의 창시자인 프란시스베이컨의 어구를 인용했는데 무릎을 치게 한다. 이 보고서를 우리나라에서는 메타버스에 대한 보고서로 알려져 있으나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에 시장전망 보고서다. 광의의 메타버스가 아니라 몰입형 메타버스가 핵심임을 알려준다.
몰입형 메타버스의 등장으로 대학은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맞이했다. 우리 대학은 이 거대한 근본적 전환을 눈 앞에 두고 무엇을 어떻게 언제 준비해야 할까? 그리고 대학 당국은 스스로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이들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메타버스가 언제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전망해야 한다. 그 다음 이 전망에 따른 미래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메타버스 캠퍼스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발전할 지를 다음 호에서 다루고 메타버스 캠퍼스 미래전략을 그 다음 호에서 다루겠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