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이다. 2015년 이후 아파트 가격은 줄곧 상승세다. 매매 가격만 오를까. 전세 가격 오름세는 더 가파르다. 지난해 7월 말 이후 계약갱신요구권 행사 없이 신규로 거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 전세 아파트 2만4026가구의 평균 전세 가격은 5억6875만원으로 2년 전 전세가(4억3614만원)보다 30.4%나 뛰었다. 실수요자들은 내집마련이 절실하다. 집을 사기는 사야겠다. 기왕이면 새 아파트가 좋을 것 같지만 너무 비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 현재 시세보다 20~30% 저렴한 새 아파트가 있다는 소식에 눈길이 간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다. 일반 아파트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는 장점 덕분에 내집마련의 틈새 전략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지역주택조합이 뭐길래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집마련
지역주택조합은 같은 동네(동일한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도·시 또는 군)에 거주하는 주민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한 조합을 말한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는 집을 지으려는 무주택 가구주들이 조합을 결성해 땅을 사고, 건축비도 직접 부담해 개발하는 방식이다.
일반 아파트는 시행사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받아 토지를 매입한다. PF로 인해 사업 과정에서 적잖은 금융 비용이 발생한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는 다르다. 기업이 아닌 조합원이 사업 주체가 된다. 조합원이 직접 토지를 매입하고 시공사를 선정해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다. 토지 매입을 위한 금융 비용, 시행사의 이윤, 분양 광고나 홍보 비용 등 여러 부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일종의 ‘아파트 공동구매’라고 생각하면 쉽다.
기존 재개발, 재건축 단지와 비교해도 사업 절차가 단순하다는 것도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의 장점이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은 안전진단 → 추진위원회 구성·승인 → 조합설립인가 → 시공사 선정 → 사업계획 승인 → 관리처분인가 → 이주·철거 → 착공·분양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설립과 조합원 모집 → 지구 단위 접수 → 토지 구입 → 사업계획 승인(건축심의) → 철거 후 착공의 과정만 거친다. 재건축과 비교하면 한결 과정이 단순하다. 덕분에 사업 속도가 빠르다.
지으려는 아파트 가구 수의 절반 이상을 조합원으로 모집하면 시공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한다. 계약금 명목으로 조합원으로부터 받은 돈은 토지 구입에 활용한다. 토지만 95% 이상 매입하면 사업은 사실상 성공이라고 본다. 분양할 때 청약통장이 필요 없고 원하는 동·호수 배정이 선착순으로 이뤄진다는 점도 장점이다. 무엇보다 현재 시세보다 20~30% 저렴한 가격으로 새 아파트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에게 매력으로 다가온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가 장점만 있다면 너도나도 이 방법으로 아파트를 구입하려 할 테지만 문제는 생각보다 사업 추진을 담보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업무대행사가 토지 확보나 사업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합원부터 먼저 모집하는 바람에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융 부담은 오롯이 조합원이 책임져야 한다. 대행사가 업무 추진비 명목으로 돈만 챙기고 조합을 방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는 지난 몇 년간 전국에서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수많은 부작용이 빚어졌으며 투자자 피해도 속출했다. 모금한 투자 금액을 모두 소진하고도 조합설립조차 못한 곳도 허다하다. 사업이 실패하거나 지연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 몫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 사례가 속속 알려지는 데도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내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사업 추진을 성공한 단지도 있기 때문에 마냥 ‘사기’로 치부하거나 ‘위험하다’고 덮어두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성공 사례가 적다는데…
▷5곳 중 4곳 지지부진 “어느 세월에…”
여기서 궁금한 점. 지역주택조합 아파트가 정말 되기는 하는 걸까. 지역주택조합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단지 소식은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은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곳으로 꼽힌다. 일례로 지난해 6월 ‘선시공 후분양’ 단지로 관심을 끌었던 서울 동작구 상도동 ‘상도역롯데캐슬파크엘’은 비교적 최근 공급된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다. 재개발이 무산된 옛 상도7구역에 건립한 아파트로, 지하 5층~지상 20층에 13개동, 950가구(전용 59~110㎡) 규모로 조성돼 올 2월 집들이를 시작했다. 지난해 일반분양을 진행할 당시 474가구를 모집하는데 1만798명이 신청해 평균 22.8 대 1의 청약 경쟁률로 1순위 마감했다. 전용 110㎡A형의 경우 60.4명과 경쟁해야 당첨될 수 있었다.
물론 상도역롯데캐슬파크엘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5년여의 사업 기간 동안 수차례 뒤바뀐 정부 정책 탓에 세 차례나 선분양을 포기했고, 골조 공사를 완성하고 나서야 분양을 하는 등 사업 추진에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다 당시 사업주관사인 태려건설산업 김 모 회장이 토지 권리가 전혀 없는 무허가 원주민에게까지 아파트를 배정한 덕분에 큰 잡음 없이 사업 기간이 대폭 줄었고, 입주까지 마칠 수 있었다.
앞서 2016년 2월 입주한 상도동 ‘상도효성해링턴플레이스(202가구)’도 상도동에서는 비교적 최근 사업을 마친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다. 우성D&C와 하나자산신탁이 각각 업무대행과 자금관리를 맡고 효성이 시공했다. 2011년 5월 조합원 모집을 마무리하고 같은 해 7월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조합설립인가 시점부터 지구단위계획 수립(약 13개월), 건축심의(약 5개월), 사업계획 승인(약 4개월), 공사(약 31개월), 입주까지 약 4년 8개월 소요됐다. 빨리 진행된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반적인 재개발·재건축 사업과 비교했을 때 너무 오래 걸렸다 하기도 어렵다.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원 모집부터 준공까지 10년을 훌쩍 넘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지역주택조합 조합원이 되면 얼마나 이득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
상도효성해링턴플레이스 조합원은 전용 84㎡를 6억3000만원(기준층)에 분양받았다. 조합원 분양 당시만 해도 일대 같은 면적 아파트가 6억원 후반대에 거래됐기 때문에 조합원은 시세보다 2000만~3000만원 저렴하게 내집마련을 한 셈이었다. 조합원이 겪었을 마음고생(?)에 비해 아주 저렴하게 집을 얻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후 서울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그나마 가끔 공급된 새 아파트 청약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또 입주 5년을 넘긴 지난 7월 상도효성해링턴플레이스 전용 84㎡는 13억2000만원(11층)에 주인을 찾았다. 조합원에게 4억7000만원에 공급된 전용 59㎡는 올 2월 6억4000만원에 팔린 이후 거래가 끊겼는데, 최근 매물 호가는 12억5000만원에 형성돼 있다.
이외에 서울 성동구 성수동 ‘트리마제(총 688가구, 2017년 입주)’, 의정부 녹양동 ‘힐스테이트녹양역(총 758가구, 2018년 입주)’ 등도 지역주택조합 사업을 마치고 입주까지 완료한 사례다.
하지만 성공보다 실패 사례가 훨씬 많다는 점을 새길 필요가 있다. 올 초 서울시가 지역주택조합 현황 파악에 나선 결과 서울시 내 지역주택조합 사업의 착공률은 5%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파악 중이던 서울시 내 지역주택조합 100~120여곳 가운데 실제 착공에 들어간 조합은 5곳 정도뿐이었다. 통상적으로 지역주택조합 5곳 가운데 1곳만이 최종 입주에 성공한다는 통계도 있다. 지역주택조합 방식으로 정비사업을 시도하는 경우는 많지만, 실제 착공까지 이어지기 어렵다는 뜻이다.
▶서울 착공 고작 5%?
▷성공시키려면 토지 확보가 관건
지역주택조합 사업 성공의 관건은 크게 두 가지. 조합원 모집과 토지 계약 여부다.
우선 조합원으로 가입하기 전 조합원 간 갈등이 없는지, 조합원 모집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는지를 확인해봐야 한다. 조합원 모집이 길어질수록 사업 비용과 분담금이 늘어날 뿐 아니라 혹여 미분양이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조합원 몫으로 돌아간다.
한 사례로 상도효성해링턴플레이스와 비슷한 시기에 입주한 ‘상도두산위브트레지움’ 역시 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지어졌다. 조합설립인가 신청을 2007년 11월에 했으니 상도효성해링턴플레이스보다 훨씬 일찍이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업 기간이 길어지는 과정에서 비용이 당초 계획보다 불어났고 전용 84㎡ 조합원분은 2007년 당초 예상 가격(5억2800만원)보다 훨씬 불어난 가격(6억5200만원)에 공급됐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는 조합원 모집부터 시작해야 하다 보니 결국 일반분양 아파트보다 사업 기간이 크게 짧지 않다”며 “오히려 사업이 무산되면 실수요자에게 돌아가는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조합원 모집이 순조롭게 완료됐다면 이번에는 토지 매입 문제가 다가온다.
기본적으로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원끼리 ‘남의 땅’에 아파트를 올리는 방식의 사업이다. 땅 주인을 설득해 땅을 전부 사들이고, 걷은 돈으로 아파트를 올려야 한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에서는 토지 확보를 하지 않아도 조합원 모집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업장 대부분이 토지 소유권 확보를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조합원 모집을 우선 진행한다. 하지만 이후에는 사업 부지의 95% 이상 소유권을 확보해야만 사업 승인 신청이 가능하다. 토지를 확보하지 않으면 사업이 표류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아예 무산되는 경우도 있다.
애초 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시작했던 성수동 트리마제는 ‘입주는 마친’ 사례지만 토지 확보가 93%인 상황에 금융위기를 맞닥뜨리며 조합이 부도를 맞은, 아픈 경험이 있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가능하려면 토지를 95%까지 확보해야 하는데 2%를 마저 사들이지 못해 사업이 오랜 기간 답보 상태에 있었다. 결국 이 조합은 2011년 해산했고 조합원은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한 채 조합원 자격을 상실했다.
업무대행사가 “토지 소유권을 확보했다”고 홍보하지만 이를 ‘소유권 이전’과 혼동하는 것도 위험하다. 토지 소유권을 95% 확보했다고 선전하는 사업장도 있지만 계약금 10%만 지불된 상태거나 계약금을 걸어두지도 않은 채 토지사용동의서만 받아놓은 경우도 다반사다. 소유권이 ‘이전’되려면 잔금을 내야 하는데 이때 토지대금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 이 과정에서 토지 소유권을 완전히 이전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추가 분담금을 내는 경우도 발생한다.
▶아직도 피해 사례 잇따라
▷업무대행사 ‘가입비 먹튀’ 주의보
이런 허점을 악용해 실제로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면서 조합 가입비만 챙길 목적으로 접근하는 업무대행사 탓에 피해가 속출하기도 한다.
올 2월 서울 북부지검은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지역주택조합 사업을 추진한 업무대행사 회장 등 11명을 배임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2015년 11월~지난해 7월까지 사업을 추진할 토지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도 토지매입률을 부풀리고 사업 현황을 속여 피해자 125명에게 조합 가입비 명목으로 60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해도 업무대행사를 비롯한 조합 임원은 월급 등 명목으로 운영비를 챙길 수 있어 손해를 볼 것이 없다”고 지적한다.
최근에는 지역주택조합 사업을 추진 중인 김포 사우5A지구(통합사우스카이타운)에서도 문제가 불거졌다. 아파트만 2908가구를 짓는 이 사업은 그동안 B업무대행사(A건설사의 자회사)가 조합원에게 받은 조합비 1900억원과 대출을 동원해 사업 부지를 매입해왔다. 하지만 토지를 조합 명의가 아닌 A건설사 명의로 해둔 것이 화근이 됐다. 최근 몇 년 새 김포 땅값이 급등하자 B대행사는 조합에 토지를 매입원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되살 것을 요구했다. 세밀하게 법적 조치를 해두지 못한 사우5A지구 조합은 최근에야 부랴부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대응에 나섰다.
결국 지역주택조합은 조합과 업무대행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렸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조합이 안전한 곳인지, 조합장은 어떤 사람이며, 업무대행사가 과거 어떤 조합을 성공적으로 분양했는지 등을 두루 살펴봐야 한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조합이 토지 매입을 마무리했을 때 참여하는 것이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현행법상 지역주택조합의 토지 매입 상황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조합원이 되는 길밖에 없다. 지자체도 조합설립인가 신청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누가, 어떻게 조합원을 모집하는지 알기 어렵다. 토지 매입 현황을 파악하려면 주변 부동산 탐문 등을 통해 직접 알아봐야 한다. 토지·건물 등기부등본을 떼서 소유주가 실제 조합에 가입했는지, 땅을 팔기로 했는지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주가 많은 조합도 피하는 것이 낫다. 가령 100개 필지로 구성됐는데 토지 주인이 200명이라면 사업 속도를 내기 어렵다. 개인별로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을 모두 설득해 땅을 구입하려면 엄청난 인내가 필요하다.
아예 착공 직후 웃돈을 주고 매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착공에 들어갔다는 것은 토지 매입을 완료하고 사업 승인을 받았다는 얘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세의 70% 가격에 조합원을 모집했다면 80~90% 가격에 전매로 내놓는 조합원도 분명 나온다. 이런 물건을 구해 시세보다 5~10%가량 저렴하게 아파트를 매입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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