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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발(發) ‘따로 또 같이’ 살기

  • 상가건물

지난회에 소개한 미국의 ‘비컨힐 마을’ 모델은 고령자들이 나이 들어서도 각자 자기 집에서 살며 회원제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를 돕고 교류하는 방식이다. 이번에는 1960년대 덴마크에서 태동한 주거형태 코하우징(공동주택·Cohousing)을 살펴보자.

코하우징은 타인과 함께 살지만 자기 집이 따로 있는 ‘따로 또 같이’ 주거형태다. 시니어들끼리, 혹은 시니어와 다른 세대가 섞여 구성되는데 비컨힐마을과 달리 이사를 해야 한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에서 확산돼 미국 캐나다 일본 등으로 전파되고 있다. 집합주택(콜렉티브 하우스), 쉐어하우스 등 유사한 주거 방식도 여럿이다.

 

갓난아기와 백발 어르신이 한자리에서 어울리는 칸칸모리 닛포리의 공동 식당. 동아일보 DB
○자유롭지만 외롭지 않은 독거생활

코하우징 주택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일부를 공유하고 나눔으로써 사람과 사람이 느슨하게 연결되는 공동체를 만든다. 각자의 집은 독립된 보통 아파트처럼 생겼고 개인들은 자유롭게 생활한다. 특이한 점은 자신의 집 외에 갖춰진 공용 공간들에 있다. 공용 부엌, 공용 거실, 공용 정원, 어린이 공간, 세탁실 등. 주민 누구나 공용공간을 이용할 수 있고 이곳에서 서로 적극적으로 교류한다.

코하우징이 혼자 사는 노인이나 아이가 있는 맞벌이 부부, 독신자를 위한 대안주택으로 발전하는 이유다. 일본 도쿄에 있는 집합주택 ‘칸칸모리 닛포리’에서는 또래 아이들이 있는 부모들이 놀이방을 관리하고 아이들은 부모가 출근한 뒤 이집저집을 놀러다니기도 한다. 시간여유가 많은 노인들이 느슨한 형태로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아이들은 각 가정에서는 외동이지만 옆집 형, 언니들과 앞집 동생을 돌보며 사람사는 세상을 배워나간다. 식사당번들이 만든 따뜻한 집밥을 공용식당에서 함께 먹는 일도 즐겁고, 뜻맞는 어른들이 식당에 남아 즐겁게 한잔하는 풍경도 흔하다.
 

○평일 저녁 공동식사가 커뮤니케이션 통로

코하우징 주민들을 묶어주는 매개체는 공동식사다. 아침이나 점심은 각자 해결하지만 저녁식사는 함께 한다. 대부분의 코하우징 주택에서 주 2~3회부터 5회까지 생활의 중요한 일부인 식사를 함께 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 기회로 삼는다. 식사는 주민들이 돌아가며 만든다. 한 번 자신이 공용식사를 만들면 다음 10번 정도는 조리를 하지 않고 따뜻한 가정음식을 먹을 수 있다. 칸칸모리에서는 평생 요리해본 적 없던 남성 고령자가 공동식사 준비를 계기로 요리에 빠져 새 메뉴 개발에 심취하게 됐다고 한다.
 

칸칸모리에서의 식사준비는 2~3명이 1조가 돼 이뤄진다. 오늘은 ‘막강한’ 지원군이 한 명 힘을 보탰다. 칸칸모리 닛포리 블로그 캡처



코하우징은 경제적이다. 예컨대 정원가꾸기를 좋아하지만 자신의 정원을 가질 여력은 없던 사람이 이곳에서는 공유 정원에서 취미를 즐길 수 있다. 심지어 채소를 심어 모두의 식재료로 삼을 수 있다면 일석삼조다. 분리수거나 건물관리도 분담해 처리하고 카풀(Carpool)도 쉽게 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한동안 시니어들을 중심으로 한 코하우징이 늘었지만 구성원들이 동시에 나이를 먹다보니 일정 시기부터 활력이 떨어지는 문제에 부닥쳤다. 그래서 젊은 세대를 적극 유치해 협력과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네덜란드 호그백 마을처럼 중증 인지장애(치매)를 가진 노인들과 치료사, 관리자가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모여 사는 ‘조금 특별한’ 코하우징도 있다.

 

○평생 자립의 끈 놓지 않는 고령자들

스웨덴의 노인 코하우징 시설 둔데르바켄에는 60가구 70명이 모여 산다. 평균연령 70세다. 동아일보는 2019년 북유럽 4개국의 코하우징 실태를 현지 취재해 보도한 바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곳이 요양원과 다른 점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 꾸려나간다’는 원칙이라고 한다. 주민들이 돌아가며 식사와 청소 당번을 맡는 자율 형태로 운영되고 이들을 도울 직원을 따로 고용하지 않는다.

거주자들은 몸이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아무도 곁에 없을 것이란 생각에 코하우징을 선택했는데, 혼자 살되, 외롭지 않은 삶이 구현돼 편하다고 말한다. 거주자들은 하루를 보내며 모였다 흩어졌다를 자유롭게 한다.

 

둔데르바켄의 커피타임. 오전 11시가 되면 건물이 부산스러워지고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모두 거실로 모여든다. 모두가 고대하는 잡담 시간이기도 하다. 동아일보 DB


 

○“요양원에서 살던 부모님처럼 늙고 싶지 않다”

핀란드에서 매매형 코하우징의 원조로 통하는 ‘로푸키리’는 ‘마지막 전력 질주’란 뜻이다. 1999년 친구 사이였던 할머니 4명이 “요양원에서 살았던 부모님처럼 늙고 싶지 않다”고 결심한 뒤, 핀란드 정부에 노인 공동 주거시설용 부지를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2005년 집이 완성될 때까지 할머니들은 당국과 줄다리기하듯 협상했다. 하지만 로푸키리를 벤치마킹한 두 번째 코하우징 주택 코티사타마는 이 과정을 2년으로 줄여 2015년 완공됐고, 외국 공무원들이 우수 사례로 견학 오는 곳이 됐다.

로푸키리에는 64명이 거주한다. 각자 집에 대해 소유권을 가졌는데 12평 정도 되는 작은 집이 약 2억 원대로 인근 주택시세와 비슷하거나 약간 저렴한 수준이라 한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새 거주자가 들어오려면 기존 거주자들의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고령자들의 코하우징은 기존 요양원보다 비용절감 효과가 커 정부들이 환영할 만하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공유주택 건설에 적극적인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주거난으로 청년들이 도심에서 밀려나는 상황과 관련이 깊다. 정부가 나서 노인을 위한 코하우징 주거공간을 만들면 노인들이 살던 도심의 큰 집을 젊은 세대에게 넘길 수 있고, 세대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 전체 주거의 20%가 코하우징으로 바뀌었다는 통계도 있다.

 

○1인 가구 증가, ‘고독’이 큰 문제

1인 가구 증가는 주요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공통 현상인데, 갈수록 노후의 ‘외로움’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꼽힌다. 예컨대 영국은 2018년 ‘외로움 담당 장관’을 신설할 정도로 1인 가구 정책을 국가 의제로 삼고 있다. 스웨덴도 코하우징에 대해 1인가구의 사회복지제도 개념으로 접근한다.

나홀로, 혹은 부부만이 생활하는 가구가 늘어난 반면 이들은 여차하면 세상과 단절돼 고립되기 쉽다. 몸이 불편해지고 질병이 늘어나는 노년기에 사회적으로 고립된다면 고독사와 연결되기도 쉽다.

비컨힐 마을 회원들에게서 반응이 좋은 프로그램 중에 ‘라이즈 앤 샤인(rise and shine) 서비스’가 있다. ‘일어나서 움직이라’는 기상 콜 같은 것인데 매일 아침 노인에게 전화를 걸어 인사하고 안부를 확인한다. 고독사 방지를 겸한다. 전화를 받은 어르신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힘을 얻고 세상과 연결돼 있다고 느낀다.

고독사는 요즘 대부분의 지자체와 국가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문제다. 일본에서는 2009년 유명 여배우 오하라 레이코가 도쿄 부촌의 자택에서 고독사한 지 사흘만에 발견돼 충격을 안겨줬다. 한국에서도 이혼 또는 사별한 대학 교수나 기러기 아빠들이 고독사한 뒤 한참만에 발견되는 일이 잇따랐다.

 

○갓난아이부터 80대까지, 함께 사는 이웃

노인 고독사에 경계심을 가진 일본에서도 쉐어하우스나 코하우징 바람이 거세다. 일본 최초의 코하우징 주택은 2003년 도쿄 닛포리에 설립된 ‘칸칸모리 닛포리’다. 스웨덴의 집합주택을 표본으로 해 2년에 걸친 워크숍을 거치며 일본에서 가능한 형태를 모색했다고 한다.

전체 거주자 51명 중 어린이가 11명. 아이들은 엄마 아빠 외에도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둘러싸여 형제처럼 자란다. 최근 새로 아기가 태어났다.

이곳 주민인 지방출신 30대 여성은 무연고 상태로 도쿄에서 일해야 해 불안감이 컸지만 칸칸모리에 들어와 이런 불안감에서 해방됐다고 한다. 일에 지쳐 퇴근하면 누구나 ‘어서와요’라고 인사해주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풀린다는 얘기다.

70대에 이곳에 들어와 80대가 됐다는 한 남성은 “태어나서 자란 배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매일 인사를 나누고 배려하는 이곳 생활이 안심감을 준다”고 공동블로그에 썼다.

칸칸모리를 지은 회사는 현재 일본 전역 7군데에 집합주택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100년 전 지어진 구옥을 리모델링해 쉐어하거나 사용하지 않게 된 사원기숙사를 개조해 집합주택으로 만드는 등 현지상황에 맞는 여러 시도를 벌이고 있다.

 

‘엄빠’들이 힘합쳐 아이들 놀이방 바닥을 새로 깔아준 날, 아이들이 신나서 뛰고 있다. 칸칸모리 닛포리 블로그 캡처,
 


 

겉에서 본 칸칸모리 닛포리 건물. 동아일보 DB
 


 

○한국에서 잘 될까


한국도 가족이 분화돼 1인가구가 대세로 자리잡아가는 중이다. 지난해 전국 1인 가구는 전체 가구 대비 30.4%를 기록했다(통계청).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노인의 78.2%가 홀몸이거나 부부만인 노인 단독가구다. 노후 주거를 생각할 때 흔히 현재 삶의 연장선만을 생각하지만 부부가 함께 지내다가 배우자가 사망한 뒤 혼자 남는 상황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한국에서도 공동주택은 민간과 공공 영역에서 모두 시도되고 있지만, 몇가지 힘든 요소가 있어 보인다.

‘코하우징 공동체(어문학사)’의 저자 최정신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민간 부문에서 건립하려 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부동산에 대한 뿌리깊은 소유개념”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에서는 부동산이 부를 늘리는 수단이 되다보니 ‘내 집’에 대한 애착이 크고, 그 만큼 공용부분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그래서 당국이 먼저 공공임대주택 분야에 주거복지 차원에서 시니어 코하우징을 도입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둘째로는 코하우징 주택에서는 타인에 대해 배려하고 자기 일은 스스로 한다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남과 함께 살다보면 마음이 상하거나 의견이 갈라질 때가 적지 않은데 양보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왕년 자랑, 자식 자랑 등에 앞세워 상대를 이기려는 자세로는 이웃과 친구가 되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나이 들어도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사람이 시니어 코하우징에 적합하다”며 “조금 불편하다고 세상과 어울리지 않으려 하면 고립 생활에 빠지게 된다”고 경계한다. 일본에서 고독사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한 유품정리회사 사장은 “고립된 독거노인들이 사회로 복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며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나 친척에게 전화하고 매일 2명 이상과 인사를 나누라”고 권한다.

 

○‘어디서 살까’에 정답은 없다.

3회에 걸쳐 최근 부상하는 미국과 유럽의 노후 주거형태로 1)미국 플로리다의 더 빌리지, 2)보스턴 비컨힐 마을 모델에 이어 3)북유럽발 코하우징을 살펴봤다. 한국 곳곳에 들어선 실버타운들은 개인 영역과 공용 영역을 모두 가졌다는 점에서 코하우징과 유사한 면이 적지 않다. 물론 다른 점도 많아 보인다. 다음 회에는 한국의 실버타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북유럽발(發) ‘따로 또 같이’ 살기… 자유롭지만 외롭지 않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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