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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개의 핀으로 둘러싸인 용산의 도자기.. 아모레퍼시픽 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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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지하철 신용산역 앞을 지나다 보면 태양 아래 투명하게 반짝이는 정육면체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건물 위와 옆, 뒷 쪽엔 큰 구멍이 뚫려있고 그 사이로 초록빛 공중공원이 보인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환한 빛을 내뿜는 보름달처럼 우아하게 빛나는 이 건물은 아모레퍼시픽 사옥이다.
국내외 건축가들이 ‘국내 가장 훌륭한 사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 평하는 아모레퍼시픽그룹 본사 건물은 지하 7층~지상 22층, 대지면적 1만4525㎡(4394평), 연면적 18만8902㎡(5만7201평) 규모다.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설계하고, 현대건설이 시공했다.
건축 공사는 2014년 8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3년 남짓 진행됐다. 투입된 공사비는 5706억원.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인 고 서성환 회장이 1956년 사업의 기틀을 세우고 1976년 10층 규모의 사옥을 지은 바로 그 장소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지난 2017년 이곳에 신사옥을 지었다. 준공 이후 약 6000여명의 상주인원 (아모레퍼시픽 및 삼일회계법인 등)이 입주해 있다.
서경배 회장은 신사옥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확정하면서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주변 지역과 조화를 이룬다는 기본 원칙을 세웠다. 키워드는 ‘연결(Connectivity)’. 자연과 도시, 지역사회와 회사, 소비자와 임직원 사이에 자연스러운 교감과 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만들고자 고심했다. 고층이 아닌 넓은 공간의 사옥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준공 이후 이 건축물은 국내외 업계와 학계로부터 큰 호평을 얻었다. 201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 및 국토교통부장관상, 2018년 한국건축가협회상 건축가협회장상, 2018년 대한민국조경문화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의 ’2019 CTBUH 어워즈' 대상(Winner) 등을 수상했다. 발주처의 의지와 이를 그려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와 윤세한 해안종합건축사무소 대표의 설계, 현대건설 직원들의 노력과 기술력이 만나 이뤄낸 결실이다.
◇ 백자 달항아리에서 영감 얻은 건축가의 설계
신사옥 건립 계획을 세운 아모레퍼시픽은 전세계 건축가 49명을 선정해 공모전에 초청했다. 이 중 30명이 참가 의향을 밝혔다. 최종 후보 5명의 건축가를 선정해 2010년 2월 12일 현상설계에 착수했고, 제출안 중 역사적인 도시 서울과의 관계성, 업무공간으로서의 사옥, 사용성 등을 고려해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제출안을 뽑았다.
그는 독일 마르바흐 암 네카 지역의 현대문학박물관 설계로 2007년 건축 디자인계의 아카데미 상이라 불리는 ‘스털링 상(Stirling Prize)’을 수상했다. 2010년 영국과 독일에서의 건축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기사 작위’를 부여받았다. 2011년 영국왕립건축협회(RIBA)의 ‘로열 골드 메달(Royal Gold Medal)’, 유럽연합(EU)에서 우수한 현대 건축 작품에 수여하는 ‘미스 반 데어 로에 어워드(Mies van der Rohe Award)’ 등 100여개의 건축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건축물의 화려함보다는 영속성, 본질, 의미를 중시한다”고 밝혔다. 영국 가디언의 건축 평론가 로언 무어는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작품에 대해 ‘진중하고 견고하다’, ‘역사적 또는 문화적인 맥락에 들어 맞는다’고 평한 바 있다.
치퍼필드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 한국을 방문해 한 눈에 반한 ‘백자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절제된 아름다움을 지니면서도 편안하고 풍부한 느낌을 주겠다는 의도로 설계가 이뤄졌다.
건축가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수직적으로 높은 건물을 짓지 않았다. 건물을 여러 동으로 나누지도 않았다. 단아하고 간결한 형태를 갖춘 단 하나의 커다란 볼륨을 가진 건축물로 설계했다. 또 그는 한옥의 중정을 연상시키는 건물 속 정원을 집어넣는 등 한국의 전통 가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요소를 곳곳에 반영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더했다.
치퍼필드는 2018년 기자간담회에서 “신사옥이 단지 일하는 공간이 아닌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는 공간이었으면 한다는 서 회장의 생각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물 사방의 문이 사람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하나의 공간으로 끌어들인다”며 “직원 뿐 아니라 지역 사람들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했다.
◇ 2만1500개 루버, 디자인 살리고 에너지 아끼고
“사옥은 크게 노출콘크리트, 유리, 알루미늄, 화강석(국내산 포천석) 등의 마감재로 시공됐어요. 이는 마감재료의 물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재료를 쓰겠다는 치퍼필드의 디자인 철학이 담긴 것이죠.”
지난 14일 사옥에서 만난 조태희 아모레퍼시픽 부동산전략팀 부장은 해안종합건축사무소 출신으로, 아모레퍼시픽 사옥 설계부터 준공까지의 여정을 들려줬다.
주변 고층 빌딩 사이 지상 22층 큐브 모양의 이 건축물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이는 독특한 외관 덕이다. 건물외벽은 백색 핀(Fin·알루미늄 루버·햇빛가리개) 2만1511개가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핀의 길이는 4.5~7m로 다양하다. 총 중량은 3300톤(t)에 달해 1년 동안 제작, 시공했다.
알루미늄 핀들로 이뤄진 기하학적인 외부 마감과 각도에 따라 나타나는 색의 변화가 이 건축물 만의 역동성과 차별성을 만들었다. 백색 수직 핀이 불규칙하게 배열돼 있어 단조롭지 않게 느껴지고, 또 야간에는 측면에서 봤을 때 실내 조명이 마치 커튼을 친 듯 은은하게 다가오는 효과를 낸다.
핀은 디자인적 요소뿐 아니라 에너지 절감의 용도로도 계획된 장치다. 태양광이 직접 내부로 유입되는 것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루버의 각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피스 설계의 경우 공조시스템 등 다른 냉난방요소를 감안해 여름철 빛을 차단하는 것이 우선시 된다.
핀은 빛이 잘 안들어오는 공간에는 빛을 유입시키는 기능도 한다. 해가 이동을 하면서 루버에 햇빛이 반사돼 빛 유입이 적은 측면 공간에 빛을 유입시키는 것이다. 핀은 날렵한 타원형에 바람의 와류를 보완하기 위해 돌기를 갖고 있다. 에너지 효율을 감안한 설계는 건물 지붕에도 있다. 363kW의 전력을 생산하는 태양광 모듈 1176장을 건물 지붕에 설치해 전기료 절감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 최대 난제 ‘노출 콘크리트‘, 정공법으로 풀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전반적으로 밝고 깨끗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는 밝은 회색빛의 노출 콘크리트, 3층 높이(15.9m)에 달하는 높은 층고가 만들어 낸 것이다.
‘노출 콘크리트’는 콘크리트 표면에 별도 마감을 하지 않고 거푸집을 떼어낸 콘크리트 구조체를 마감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으로 그 자체가 나타내는 독특한 조형미를 강조하는 공법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건축 전문가들은 내부 벽면과 바닥을 보고 하나같이 혀를 내두른다고 한다. 매끄러운 표면의 고품질 노출콘크리트 공법을 구현해내는 데는 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의 노출콘크리트 품질이 국내 노출 콘크리트 수준을 향상시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사실 설명을 듣기 전 기자의 눈엔 이게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인가 싶었다.
조태희 부장은 “콘크리트가 굳는 과정에서 중간 중간에 기포가 생길 수 있다”면서 “이런 기포 자국이 생기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 노출 콘크리트 공법 적용에도 큰 부담이 없는 반면에 콘크리트 표면에 별도 마감 처리를 하지 않는 공법을 적용하면서 기포 자국이 남지 않은 매끄러운 표면을 구현해내고자 하면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40개월에 가까운 긴 공사기간 동안 비바람에 때가 타지 않도록 보호하고 공사 중 파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비상 계단 통로에서도 매끈한 노출콘크리트 벽면을 볼 수 있었다. 코어 벽체, 기둥, 아트리움 내부 거대한 격자월, 콘크리트 난간, 심지어 에스컬레이터 박스까지 노출콘크리트를 적용했다.
“왜 이렇게까지 한 건가요?”라는 기자의 우문에 “완벽을 추구하는 세계적인 건축 디자이너의 고집과 올곧은 철학, 그리고 “해봤어?” 정신으로 설계자와 발주처의 요구를 실현해낸 국내 시공사가 만들어 낸 결실”이라는 현답이 돌아왔다.
시공을 맡은 현대건설도 현장의 가장 큰 난제였다고 회고했다. 현대건설 측 담당자들에겐 설계사와 발주처가 원하는 노출 콘크리트의 품질 수준을 이해하는 게 최대 선행 과제였다. 실제 직원들이 38개월의 공사기간 동안 총 28차례나 독일과 우리나라를 오가며 논의를 하며 대안을 찾았다고 한다. 매끄러운 표면 시공을 위해 거푸집을 제작할 때나 콘크리트 타설을 할 때 매우 정밀하게 작업을 진행하면서 품질관리에도 신경써야 했다.
김종호 현대건설 부장(공무팀장)은 “노출 콘크리트를 구현하는 것이 공사 중 난이도가 가장 높았던 부분이면서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라면서 “노출 콘크리트 공법은 정형화된 틀이 없고 보는 사람의 시각 차이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나올 수 있는 분야라, 설계사와 발주처가 원하는 품질 수준과 콘셉트를 우선 파악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콘셉트를 이해한 후에는 모든 부위 별로 실물 크기의 목업(mock up)공사(샘플 시공)를 수십 차례 했다”면서 “디자이너와 협의를 거쳐 최종 품질 수준과 공법을 확정한 뒤 실제 시공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한땀 한땀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할 수 있도록 현장 직원 뿐 아니라 모든 근로자들에게도 지속적으로 교육을 실시했고, 시공 시 주의해야 할 점을 공유하며 공사를 진행해 나갔다”고 했다.
◇ ‘하늘에 떠 있는 대형 정원…곳곳에 소통·휴식·문화 공간
5층에 들어서자 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정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빽빽한 빌딩숲 서울 도심 지상에서도 보기가 쉽지 않은 큰 규모의 광장이 공중에 떠 있는 듯 했다. 바닥엔 물이 흐르고 새 한 마리가 물에 앉아 목욕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제법 높게 자란 푸른 나무 아래 벤치에는 직원들이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코로나 유행 이전에는 이곳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친목을 도모하는 이벤트도 있었다고 했다.
바로 많은 임직원이 이 건축물의 하이라이트로 꼽는 ‘옥상정원’이다. 이 건물 5층과 11층, 17층에 세 개의 정원이 있다. 정육면체의 건축물의 세 면을 뚫어 공간을 비워낸 대신 누구나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을 담은 것이다.
천장에는 레오 빌라리얼 작가의 대규모 미디어 작품이 설치돼 있다. 미디어 캔버스를 구성하는 2만2000여개의 발광다이오드(LED)가 작가가 제작한 프로그램에 따라 빛의 밝기, 방향, 속도, 지속시간 등을 바꾸면서 생명과 에너지가 피어나는 추상적인 형상을 그려낸다. 작품 제작에 있어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점은 ‘디지털 캠프파이어’ 라는 개념이다. 이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작품 주위에 모여들어 소통하고 서로 예술적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스스로 영감을 얻고 나누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이는 용산공원의 조경과 함께 어우러져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제안했다. 한국 전통 조경의 ‘차경'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차경(借景)은 ‘경치를 빌린다’는 뜻으로 우리나라 전통 정원 조성의 경관 기법 중 하나다. 창을 통해 바깥 경치를 집 안으로 들여와 감상 대상으로 활용하는 한옥의 설계가 쉬운 예다.
근무 중인 임직원들이 1층까지 나오지 않더라도 잠시 바람을 쐬며 도심 속이 아닌 자연에 나와 근무하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계획했다. 조태희 부장은 “이를 위해 해당 공간에 위치한 16개의 기둥은 사라졌고, 구조적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옥상층에 브리지 트러스를 설치해 해당 공간을 안전하게 상부에서 지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층부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라면, 5층 이상의 업무 시설은 직원들을 위한 공간이다. 사옥에는 아모레퍼시픽 임직원의 업무 효율성과 복지를 고려한 다양한 공간들이 있다. 2~3층에 사내 어린이집과 450석 규모의 대강당 아모레 홀(AMORE HALL) 등이 있다. 5층에는 임직원을 위한 마사지 공간, 피트니스센터, 수유실 등을 갖춘 레이디스 라운지 등도 있다.
6~21층은 일반 사무 공간으로 열린 소통을 극대화하기 위한 구조에 중점을 뒀다. 많은 사람이 더욱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수평적이고 넓은 업무 공간을 갖추고 있다. 임직원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사무실 내 칸막이를 없앤 6인용 오픈형 데스크가 구비됐다.
또 곳곳에 상하층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내부 계단도 마련했으며, 회의실은 모두 투명한 유리벽으로 구성했다. 개인 업무공간 외에 구성원 간 협업 시 활용하는 공용 공간을 확대하고, 집중적으로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1인용 워크 포커스 공간을 마련하는 등 업무의 성격, 개인의 필요에 따라 업무 공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건축물도 자연, 도시,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등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작품이자, 필요 이상의 높이나 유행하는 디자인 보다는 건축물 자체의 가치와 수준에 집중한 작품이다.”
[건축의 맛]③ 2만개의 핀으로 둘러싸인 용산의 도자기.. 아모레퍼시픽 사옥 | 다음부동산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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