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오너리스크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계열사 일감몰아주기와 횡령·배임 등 각종 혐의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고, 공정거래위원회 총수 지정 이후 내부거래 이슈를 해소해야 한다는 점도 조 회장에게 상당한 부담이다.
◇ 부친 때부터 각종 횡령·배임·탈세 논란…재판 진행 중 =효성그룹은 오너가(家) 리스크에 민감하다. 2000년대 후반 조석래 명예회장 시절부터 시작된 비자금 조성 혐의와 정경유착 논란, 일감몰아주기 의혹 등은 10여년 넘게 이어지며 조현준 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조 회장은 2002년과 2004년 미국에서 450만달러 짜리 호화주택과 180만 달러 짜리 콘도를 구입했다. 거액의 자금 조성 과정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 사돈집안이라는 이유로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결국 검찰이 재수사에 돌입하자 조 회장은 미국 콘도를 매입가보다 30만달러 낮은 150만달러에 급매물로 내놓기도 했다.
검찰은 조 회장이 4차례에 걸쳐 효성아메리카의 자금 550만달러 등 회삿돈으로 미국 부동산을 구입한 혐의를 포착했다. 조현준 회장은 유죄가 인정됐고 2012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9억775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듬해에는 분식회계와 탈세,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았다. 검찰은 조 회장과 형제들의 출국을 금지했고, 압수수색과 임원 소환조사 등을 벌였다. 조 회장은 법인자금 16억원을 횡령하고 부친으로부터 비자금 157억원을 증여받아 증여세 70억원을 포탈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조 회장의 법인카드 사적 사용 등을 통한 횡령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지만, 양도소득세 등 포탈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봤다. 이 같은 판단은 지난해 말 대법원에서도 유지됐다. 조 회장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형이 확정되면서 가까스로 실형을 피했다.
국세청은 조 명예회장과 조 회장에게 200억원대의 세금 부과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두 부자는 1심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증여세·양도소득세 세금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13일 열린 세금 불복 소송의 1심 재판부는 217억1000여만원 가운데 211억7000여만원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조 회장의 불법 논란에 불이 붙던 2013년에는 효성가 3세간 ‘형제의난’이 발발했다. 조 명예회장 차남인 조현문 변호사는 2013년 보유하던 효성 지분을 전량 처분하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조 변호사는 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 전방위 소송을 제기했고, 2014년에는 검찰에 형 조 회장과 동생 조 부회장의 그룹 계열사 배임·횡령 혐의를 수사해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하기도 했다. 조 변호사의 지속적인 고발로 쌓인 조현준 회장의 혐의만 50여가지에 달했다.
조 회장이 2013년 자신이 최대주주인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 상장이 무산되자 주식을 다시 사들이는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에 유상감자와 자사주를 매입하도록 지시해 179억원의 손해를 입혔다는 주장도 조 변호사에게서 나왔다.
2015년에는 SBS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알고싶다’에서 조 회장이 보석사업이나 아트펀드(미술품에 투자해 수익을 나눌 목적으로 운용된 펀드)를 운영하면서 비자금을 형성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은 2018년 아트펀드뿐 아니라 조 회장이 친분이 있는 미인대회 출신 영화배우나 단역배우 등을 가짜로 채용해 급여를 허위 지급하거나 측근의 회사를 이용해 계열사 사업의 통행세를 거두는 등 총 200억원대의 횡령과 배임혐의를 저질렀다고 기소했다.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 관련 179억원 손해 혐의도 이 기소장에 함께 적시돼 있다.
당시 조 회장이 연예계와 스포츠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엔터테인먼트사업에 새롭게 진출하던 만큼, 이 같은 혐의들은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1심 재판부는 조 회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지만, 지난해 말 2심에서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지인이나 측근을 계열사에 채용한 것처럼 꾸며 허위로 급여를 지급해 개인적으로 쓴 행위는 유죄로 판단했지만, 아트펀드 혐의를 무죄로 본 것이다.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 관련 혐의도 무죄로 봤다. 조 회장과 검찰은 대법원 최종 판결을 위한 재판을 진행 중이다.
조 회장 지시로 그룹 차원에서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를 부당 지원하도록 한 혐의에 대한 공판도 이뤄지고 있다. 검찰은 2019년 말 조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고, 1년 만에 첫 공판이 진행됐다.
공정위는 2018년 같은 혐의로 조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고, 효성그룹에는 3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회사는 같은 해 과징금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1월 패소했다.
조 회장은 부친과 함께 회삿돈으로 개인 변호사 비용을 처리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참여연대는 2019년 4월 조세포탈 등 각종 사건에서 400억원 규모의 변호사 비용을 회삿돈으로 지출했다며 조 명예회장과 조 회장을 고발했다. 당시 효성은 검찰 고위직 출신 전관 변호사를 여럿 선임해 재판에 대응해 왔다.
경찰은 총수일가 등이 직접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회사가 지불하도록 한 것은 업무상 횡령 혐의가 적용된다고 봤고, 2019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2019년에는 베트남 등 해외법인으로부터 받아야 할 기술사용료를 실제보다 헐값에 받는 식으로 세금한 탈루한 혐의로 국세청 조사가 진행됐다. 효성그룹은 비용을 적게 계산해 해외법인이 본사에 지불해야 할 무형자산 사용료를 제대로 받지 않았고, 이에 따라 한국 본사도 세금이 적게 책정됐다는 의혹이다.
사정당국의 칼날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13일 ㈜효성과 효성중공업 등에 조사 공무원 약 20명을 보내 대대적인 현장조사를 벌였다.
공정위는 ㈜효성과 효성중공업이 자회사 진흥기업을 부당지원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효성중공업은 진흥기업 지분 48.19%를 보유 중이다. 공정위는 효성중공업이 건설사업을 따내면서 진흥기업을 공동 시공사로 끼워넣는 방식 등으로 지원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 공정위 규제 불가피…내부거래 90% 넘는 개인社도 =효성그룹은 국내 대기업집단 중 공정위의 사익편취 규제 대상 계열사가 가장 많다. 지난해 5월 공정위가 발표한 일감몰아주기 감시 대상은 ㈜효성과 효성ITX, 갤럭시아머니트리(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즈) 등 상장사 3곳과 신동진, 에이에스씨,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 공덕개발, 효성토요타 등 비상장사 12곳 총 15곳이다.
다만 갤럭시아마이크로페이먼트는 청산 절차를 밟고 있고, 조현준 회장 100% 개인회사이던 갤럭시아코퍼레이션은 지난해 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개정된 공정거래법에 따라 총수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계열사는 상장사와 비상장사 모두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효성그룹 주력사는 모두 공정위 사정권에 들어있다.
계열사와 연간 거래금액 200억원 이상이거나 전체 매출에서 내부거래 비중 12% 이상, 정상가격과 거래조건의 차이 7% 이상 등 하나라도 해당되더라도 규제를 받는다.
현재 오너가 지분율을 살펴보면 조 명예회장은 ▲㈜효성 9.43% ▲효성티앤씨 8.19% ▲효성화학 6.70% ▲효성중공업 10.18% ▲효성첨단소재 10.18%를 보유하고 있다. 조 회장은 ▲㈜효성 21.94% ▲효성티앤씨 14.59% ▲효성화학 8.76% ▲효성중공업 5.84% ▲효성ITX 35.26% ▲효성티앤에스 14.13%를, 조 부회장은 ▲㈜효성 21.42% ▲효성화학 7.32% ▲효성중공업 4.88% ▲효성첨단소재 12.21% ▲효성티앤에서 14.13%를 들고 있다.
㈜효성은 지난해 내부거래로 353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연결기준 연매출 2조7826억원의 12.7% 수준이다. 효성중공업은 1919억원으로 6.4%를, 효성화학은 2430억원으로 13.4%를 기록했다. 효성첨단소재는 내부거래 비율이 32.0%(7662억원)로 나타났다. 효성ITX의 내부거래율은 5.9%이다.
비상장사들의 경우 그룹사 의존도가 더욱 두드러진다. 조 회장이 지분 62.78%,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가 18.05%, DSDL 3.65% 등의 주주 구성을 그리는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는 효성 계열사 의존도가 73.3%에 달한다.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는 조 회장과 3형제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고, DSDL은 조현준 회장의 둘째 작은 아버지 회사다.
또 ▲조 명예회장과 조 회장이 각각 50%씩 지분을 보유한 공덕개발은 93.7%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는 55.9% ▲조 부회장이 최대주주이지만, 3형제 회사인 신동진은 38.1% ▲㈜효성과 3형제가 지분을 나눠들고 있는 효성티엔에스는 19.2% 등이다.
사익편취 의혹을 벗기 위해서는 오너가가 지분율을 낮추거나 내부거래 비중을 큰 폭으로 낮춰야 한다.
◇ 지분율 축소시 경영권 방어 전략 고심해야 =조 회장 일가가 그룹사 지분율을 낮춘다면, 경영권 방어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은 막강한 지분율로 표결에서 우위를 확보해 왔다. 하지만 도덕성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만큼, 외부와 주주의 지지를 받기 힘들수도 있다.
실제 11.11%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지난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에 반대표를 행사한 바 있다. 감사위원 선임 때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룰’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 ㈜효성은 오너가 지분율이 55% 이상이다. 단순 계산으로 3%씩 의결권을 적용하면 조현준 회장과 조 명예회장, 조 부회장 등의 유효 지분율은 9%에 불과하다. 나머지 특수관계자를 합산해도 11.32%다.
국민연금과 5% 이하를 가진 외국인 및 기관투자자는 물론, 전체주식의 25% 가량을 쥔 소액주주 표심에 따라 이사회 장악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