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20> 앞으로 집은 얼마나 필요할까?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주택이 부족하다고 신도시를 추가 지정하고 도심 고밀 개발을 추진한다. 어떤 이들은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었으니 이제 대량 공급은 더 이상 필요 없고 개발시대나 필요했던 신도시를 추진하는 것도 시대착오라고 단언한다. 과연 맞는 말일까. 다양한 통계가 나오고 관련 연구가 꾸준히 이뤄져 왔음에도 이러한 주장이 계속되는 건 아마도 주택수요의 본질에 대해 여전히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자꾸 실수요를 과소평가하고 무리한 수요억제 정책을 내놓는 것이 아닐까. 대체 집은 얼마나 더 필요한 것일까.
인구보다 가구
주택을 소비하는 단위는 인구가 아니라 가구(Household)다. 인구가 줄어도 가구가 늘어난다면 집은 그만큼 더 필요하다. 두 명의 자녀와 함께 사는 4인 가족이 있다고 하자. 자녀들이 장성해서 따로 독립을 하게 되면 1가구는 3가구로 분화한다. 인구수는 변함없지만 두 채의 집이 추가로 필요하다. 그럼 원래 집을 3개로 나눌 수 있는가. 거의 불가능하다. 상당 기간 부모는 원래의 집에 거주하면서 장기적으로 집을 줄이거나 이사를 계획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 거처를 찾는 자녀들은 당장 새집이 필요하다. 한 사람당 평균 30㎡의 추가 공간이 필요하다.
감소하기 시작한 인구와 달리 가구는 당분간 증가할 전망이다. 통계청의 가구추계를 보면, 향후 10년간 1, 2인 가구는 약 250만 가구 증가하는 반면 3인 이상 가구는 90만 가구 감소한다. 소득이나 주거비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최소 160만 가구를 위한 집이나 방이 필요하다.
이러한 가구 증가 경향에서 또 한 가지 눈여겨볼 대목은 새로 구성되는 1, 2인 가구가 기존에 3인 이상 가구가 사용하던 빈집에 들어가 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식구가 많은 가구가 거주하던 집은 주로 중대형이므로 필요 이상 넓고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증가하는 1, 2인 가구를 위한 주택은 대부분 신규 공급이 필요한 순수요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수요가 집중되고 있는 수도권은 어떨까. 통계청 추계에 의하면 수도권 인구는 2032년 이후 감소하지만 가구는 앞으로 20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향후 10년만 보면 1~3인 가구는 146만 가구 증가하고, 4인 이상 가구는 54만 가구 감소한다. 지금 있는 주택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해도 92만 가구의 주택이 추가로 필요하다. 향후 5년간은 연평균 12만 가구가 증가하는데 수도권 3기 신도시 공급량(25만 가구)은 수도권 수요 2년치에 불과하다.
소득과 주거비
주택 수요의 또 다른 핵심적인 요인은 소득과 주거비다. 설령 인구와 가구가 증가하지 않더라도 소득이 증가하면 더 넓고 좋은 집에 살고 싶어진다. 유명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소득이 있는 사람들은 단둘이 살아도 40~50평 이상 되는 넓은 집에 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좁고 낡은 집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고 새로 지은 넓은 집으로 수요가 몰린다. 최근 대도시에서 나타나고 있는 신축 중대형주택 중심의 가격 상승은 이를 방증한다.
2019년 주거실태조사자료를 이용해 추정해보면 가구 소득이 1% 증가할 때 주택수요는 0.2% 정도 증가한다. 물가를 고려하면 도시가구의 실질 소득증가율은 연평균 약 2% 정도이니 향후 10년간 소득에 의한 수요증가는 현재 주택 수의 4% 정도일 것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약 2,100만 가구, 수도권에는 980만 가구의 주택이 있으므로 소득증가로 인한 수요는 전국 80만 가구, 수도권 40만 가구로 추정된다.
반면 주거비는 주택수요를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재산세가 올라가고 관리비가 많이 든다면 집을 넓히거나 새집을 장만하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같은 자료로 추정해보면 주거비가 1% 증가할 때 수요는 0.04% 정도 감소한다. 가장 상승폭이 크다고 할 수 있는 수도권의 경우 주거비 상승률은 최근 10년간 연 3% 내외다. 이를 감안하면 향후 10년간 약 1.2%의 수요 감소가 전망된다. 전국적으로는 24만 가구, 수도권에서는 12만 가구의 수요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소득과 주거비 요인을 함께 고려해보면 10년 동안 전국적으로 56만 가구, 수도권에서 28만 가구의 수요증가가 예상된다. 결국 가구 증가 요인까지 고려하면 향후 10년 동안 전국 약 200만 가구, 수도권 약 120만 가구의 집이나 방이 더 필요하다. 물론 보다 정교한 수요모형을 이용하면 다소 다른 값이 나올 수 있어도 큰 오차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보다 더 많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멸실과 대체수요
그런데 주택시장에는 앞서 살펴본 신규 수요 외에도 빈집이나 멸실에 따른 대체 수요가 존재한다. 낡은 집들은 여러 요인으로 철거되고 거기 살던 사람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게 된다. 때로는 노후 주택을 비워둔 채 떠나기도 하고 재개발, 재건축 과정에서 집이 없어지기도 한다. 여하튼 공가나 멸실이 생기면 이들을 대체할 주택이 필요하다.
지난 10년간 재고 대비 멸실률은 전국 0.5%, 수도권 0.6% 수준이다. 공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완전히 사라지는 주택에 대한 대체수요를 추정하면 전국에서 연 11만 가구, 수도권 5만 가구 정도다. 물론 상당수는 재개발이나 재건축 후에는 멸실 주택 수의 1.3배 정도가 공급된다. 이 부분을 감안한다면 대체 수요는 신규 수요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재개발이나 신개발을 가리지 않고 얼마나 집을 더 지어야 하는가를 알고자 한다면 멸실되는 주택만큼을 그대로 대체수요로 잡아야 한다.
위의 주택수요 요인들을 종합해보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향후 10년간 전국적으로 연 30만 가구, 수도권에서는 연 17만 가구 정도의 수요가 있다고 봐야 한다. 가구 증가 속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5년간은 그 이후보다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을 것이다. 이 결과는 주택보급률 100%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주택수요는 지역적으로 매우 다르므로 하위시장별로 세분화된 수요 추정이 필수적이다. 전체 수요가 충족됐다 하더라도 특정 지역에 수요가 몰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철저한 수요분석이 주거안정의 첫걸음
기업이나 정부나 수요분석은 모든 계획의 출발점이다. 수요 예측에 오류가 많은데 공급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더욱이 주택은 금방 만들 수 없으니 정교한 수요분석이 훨씬 더 중요하다. 주택수요 증가의 가장 큰 요인은 인구보다는 가구라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러므로 도시계획과 주택정책에 있어 앞으로는 인구가 아닌 가구를 기반으로 한 수요추정과 계획수립이 절실히 요구된다.
아울러 소득과 주거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주택의 수명에는 물리적 수명뿐만 아니라 사회적 수명, 경제적 수명이 있다는 점이다. 무너질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화장실 개수가 적거나 난방비가 너무 많이 든다면 사람들은 새집을 찾게 된다. 집의 수와 가구의 수가 동일하다고 주택수요가 충족된 것이 아니다. 위치는 또 어떠한가. 학교나 직장뿐 아니라 이제 공원과 병원도 중요해지고 있지 않은가. 물리적으로 좋은 집이라 하더라도 위치가 안 좋으면 사회·경제적으로는 나쁜 집이다.
주거복지는 모든 복지의 시작이다. 집 걱정하는 국민이 많으면 나라의 미래가 밝을 수 없다. 집 걱정이 없어야 삶이 편안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다. 미래 세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행복을 제대로 누리게 해주려면 주거안정은 필수적이다. 그러니 제발 수요분석을 좀 철저히 하자. 집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래야 비로소 주택문제가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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