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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는 스타벅스처럼, 집소개는 유튜브로… 복덕방의 이유 있는 ‘변신'

멀리서도 눈에 띄는 초록색 간판, 정갈한 하얀색 글씨. ‘부동산’이라는 글자만 보이지 않으면 얼핏 카페로 착각하기 쉬운 이 곳은 다름 아닌 ‘공인중개업소'였다. 인테리어를 새롭게 한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K공인중개업소 대표 A씨는 “인테리어를 하면서 스타벅스 상징색을 생각하고 초록을 골랐다.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카페 아니냐”면서 “주요 고객으로 떠오른 젊은층 눈길을 끌기 위해 세련되게 인테리어하고, 잘 보이라고 세 면을 유리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창문에는 고급스런 황금색 글씨로 ‘Dream is Nowhere? Dream is now here!(꿈이 어디에도 없다고? 꿈은 이제 여기 있어!)’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A씨는 “최근 집값 급등으로 미래에 희망이나 꿈이 없다고 말하는 청년들이 많다. 그런 청년들에게 꼭 맞는 집을 찾아주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방배역 근처인 이곳은 2호선 라인을 이용하려는 학생과 직장인들이 주요 고객층인 원룸촌이다. 심화하는 경쟁 속 고객의 눈길을 끌기 위한 자구책인 셈이다.

공인중개업소가 과거의 낡은 ‘복덕방’ 이미지를 벗고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젊은 감각으로 인테리어에 힘을 주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도 적극 활용한다. 공인중개업계 관계자들은 “시대를 따라가기 위한 노력”이라고 했다. 이러지 않으면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초구 효령로에 위치한 기쁨부동산 전경(좌)과 처음 인테리어 했을 때의 모습(우)/황원지 인턴기자
 
서초구 효령로에 위치한 기쁨부동산 전경(좌)과 처음 인테리어 했을 때의 모습(우)/황원지 인턴기자

◇ 유튜버로 속속 변신하는 ‘복덕방’ 사장님들

1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낡은 쇼파, 커다란 지도의 이미지로 대표되던 ‘복덕방’의 변신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인테리어에 힘을 주는 경우가 많다. 외관에서부터 고객들의 호감을 얻기 위한 노력이다. 서울 도곡동의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복장부터 신경쓰다가 인테리어에까지 힘을 주는 양상”이라고 했다.

대학생과 예술인들이 뒤섞인 홍대에 위치한 C공인중개업소도 대문부터 옅은 갈색의 원목을 사용해 카페 분위기를 냈다. 내부는 블랙 벽지에 화분으로 장식했고, 천장에는 하얀색 형광등 대신 따뜻한 빛의 펜던트 등을 달았다. 이 공인중개업소 D소장은 “아무래도 카페·옷집 등 상업용 매물을 주로 다루다 보니 주요 고객층이 30대 전후로 젊고, 문화예술계 종사자가 많다”면서 “안목이 높은 고객들에 맞춰 인테리어도 고급스럽게 했다”고 했다.

중앙대학교 앞 원룸촌인 상도1동에 위치한 S공인중개업소는 금색 몰딩으로 포인트를 준 외곽에 귀여운 느낌을 주는 날개 모양의 장식이 붙여 인테리어를 했다. E 대표는 “주요 고객층이 20대 학생들이다보니 외관을 깔끔하게 단장했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도 요즘 공인중개업소의 특징이다. 신대방역 근처 신림동에서 5년 넘게 중개업을 하고 있는 김대혁 팀장은 2년 전 ‘신림동원룸 김팀장’ 이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직접 매물로 나온 원룸에 가서 영상을 찍고, 자막을 다는 등 깔끔하게 편집해 올린다. 실속있는 영상에 구독자는 꾸준히 늘어 현재 2700명이 넘었다.

김 팀장은 “요새 젊은 층은 발품을 팔아 돌아다니며 집을 보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며 “최근엔 특히 코로나 때문에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유튜브로 집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자구책으로 젊은층이 많이 보는 플랫폼인 유튜브를 이용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새로 개업한 공인중개업소에게 고급진 인테리어·유튜브는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기존에 관계를 쌓아온 임대인, 임차인 등 인맥이 있는 부동산과 경쟁해야 하는 신규 부동산들은 마케팅에 힘을 쏟는다. 네이버에 ‘부동산 유튜브’라고 치면 ‘이제 부동산도 고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마케팅이 필요하다’며 컨설팅을 해주는 업체들도 수두룩하게 뜬다. 신규 개업 부동산들을 노린 광고다.

작년 온라인 강의 플랫폼 인프런엔 신규 개업 부동산 업체를 위한 맞춤형 유튜브 강의가 올라오기도 했다. 홍대에 위치한 C 공인중개업소의 경우 매물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사진과 함께 매물번호를 올리고, 인스타 내 전화하기 버튼을 통해 고객 연락을 받는 방식이다. 최근 유튜브를 시작했다는 홍대 한 부동산의 G씨도 “과거엔 블로그만 이용했지만, 요새는 유튜브도 해야 한다고 해서 막내 직원 주도로 시작했다”고 했다.유튜브에 ‘홍대 부동산’을 치면 나오는 영상 목록. 홍대 근방 부동산들이 영상을 올려 매물을 소개하고 있다./유튜브 캡쳐

◇ 치열해진 경쟁에… “생존 필수 전략”

이 같은 복덕방의 변신엔 이유가 있다. 일단 공인중개업소의 경쟁이 매년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개업 공인중개사 수는 2015년 8만6474명에서 2020년 11만 786명으로 5년만에 20% 증가했다. 중개업소의 폐업은 줄어드는 반면, 개업은 늘면서 자리 싸움도 격화하는 중이다. 2020년 전국 공인중개사 폐업 건수는 1만7561건으로 18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개업한 중개업소는 전년 대비 3.8% 증가했다. 시장에 들어오는 이는 많은데 나가는 이는 적은 셈이다.

서울 방배동 H공인중개업소의 대표는 “코로나로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진입장벽이 낮은 부동산쪽 창업이 많아졌다”고 했다. 기자가 방배역 3번출구에서부터 H공인중개업소까지 오는 길에 마주한 부동산만 10곳이 넘었고, H공인중개업소가 위치한 사거리엔 모퉁이 네 곳 중 세 귀퉁이에 부동산이 있었다. 서울 신림동 남녀칠세부동산의 김형민 대표도 “사무실에 책상만 놓으면 되는 사업이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 이후 중고차 업계 쪽에서 넘어온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젊은 층의 부상도 ‘복덕방’의 변신에 한몫했다. 몇년 사이 부동산 시장에선 20-30대의 비중이 커졌다. 과거엔 집 계약같은 큰일에 집안 어른들이 나섰다면, 시대가 변하면서 젊은층도 계약에 나서고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하는 매입자연령대별 주택매매거래 통계에 따르면, 2020년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1년간 전국 30대 이하 주택매매 매입자는 24만5120명에서 32만9940명으로 증가했다. 전체 매매건수 대비 비중으로 따지면 2019년엔 평균 24%던 30대 이하 매입자 비중은 2021년 1분기 28%까지 증가했다. 2020년 12월에는 전체의 31%를 넘기기도 했다.

전체 주택매매가 아닌 아파트로 좁혀서 보면 20~30대의 매수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부동산원의 매입자연령대별 아파트매매거래 통계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입자 중 3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평균 30%에서 2021년 1분기 평균 41%로 급격히 커졌다. 해당 수치는 작년 8월 처음으로 40%를 돌파해 올해 1월엔 44.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장에서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전월세의 경우 20~30대 고객 증가세가 더욱 가파르다고 입을 모았다. 관악구 봉천동에서 15년 넘게 공인중개업에 종사했다는 J씨(52)는 “몇년 사이 혼자서 집을 보러 오는 젊은층이 부쩍 늘었다”며 “과거엔 전월세거래라도 부모님이 꼭 따라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그는 “요새는 직방이나 다방에서 혼자 매물을 보고 와서 계약하겠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저금리나 풍부한 시중 유동자금이 자산시장으로 쏠리며 부동산 거래량 자체가 늘어났다. 관심도가 높아진 만큼 공인중개소 개업도 늘어 경쟁이 심화되는 양상”이라고 했다. 그는 “예전만 해도 공인중개업소는 일명 ‘목 좋은 곳’에 자리잡는 게 제일 중요했지만, 이제는 부동산 거래어플·유튜브·인스타그램 등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나며 부동산의 마케팅 기술이 성과에 크게 영향을 주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인테리어는 스타벅스처럼, 집소개는 유튜브로… 복덕방의 이유 있는 ‘변신' - 조선비즈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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