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부터 전 세계 미술관, 갤러리, 경매장이 문을 닫았다. 세계적인 명화를 감상하기 위해 해외로 향하던 관광객들은 닫힌 하늘길을 원망하며 국내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집합금지 명령에 전시나 갤러리는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화랑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상황에 글로벌 미술 시장의 침체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아 미술의 장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확장해 현재 미술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고 있다. 세계적인 아트페어들은 앞다퉈 온라인 전시로 대체하며 갤러리들을 모아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뤄냈다.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미술품들이 온라인을 통해 팔려나갔다. 미술관에서 감상하던 오프라인 공간의 경험은 버추얼 갤러리로 대체되었고, 여러 온라인 플랫폼의 등장으로 부유층만 소유하고 투자할 수 있었던 미술품 투자는 전 세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다.
이 중심에는 MZ세대가 자리하고 있다. 경매, 갤러리 전시, 아트페어의 뷰잉 룸 등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향하자 2030세대의 미술 시장 진입이 활발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 미술계의 주류 소비층으로 떠오른 것도 밀레니얼 세대다. 세계 최대 아트페어 주관사인 아트바젤(Art Basel)과 글로벌 금융기업 UBS가 발간하는 <아트 마켓 보고서 2021(The Art Market 2021)>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중국, 멕시코 등 10개국 고액자산가 그룹의 밀레니얼 세대가 작년 예술작품 구입에 평균 22만8000달러(약 2억5900만원)를 소비하며 전체 세대 중 최대 액수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 부모세대라고 할 수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주로 55~73세)의 평균 구매액인 10만9000달러(약 1억2400만원)를 2배 이상 넘어선 수치다.
▶명화 프린팅·원화 렌털·구독서비스
신진작가 작품 구매 등 다양해진 플랫폼
MZ세대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온라인 미술관을 통해 언제든 원하는 작품을 보고 즐기고, 예술가들이나 갤러리들과도 인스타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유롭게 소통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또 이들 세대가 선호하는 브랜드의 의류와 신발, 화장품 등 유명 브랜드들과 아티스트들 간의 협업으로 탄생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들이 선호하는 상품의 아티스트 한정판들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평가받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전세대에게 예술작품 구매라고 하면 대단한 컬렉터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선입견이 이들에게는 적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MZ세대의 수요를 반영하듯 예술작품 구매는 더는 일부 사람들만이 향유하는 어려운 취미가 아니다.
요즘은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 클릭 하나로도 작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신진작가를 중심으로 가격대가 부담스럽지 않은 중저가 작품들을 타깃으로 하는 플랫폼도 다수다.
예술작품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온라인 판매 플랫폼 역시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 예술 플랫폼 ‘아트다’에 따르면 온라인 예술 시장은 통계가 시작된 2013년부터 매년 13~15%씩 성장하고 있다. 미술 관련 온라인 플랫폼의 한 유형으로는 저작권이 없는 명화들을 프린팅해주거나, 온라인 화랑의 역할을 자처하며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해 수수료를 취하는 경우다. 최근에는 이러한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한 유통업계도 온라인 예술 작품 판매에 뛰어들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운영하는 온라인몰 ‘에스아이빌리지(S.I.VILLAGE)’는 지난해 10월부터 앤디 워홀, 제프 쿤스, 데이비드 걸스타인, 최영욱 등 국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여러 프레임의 아트 포스터와 다양한 오브제의 조소 작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 외에도 아트스퀘어는 한 번 쓰고 버리는 화환 대신 신진작가들의 그림을 선물하는 아트화환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디어로 무장해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소유보다 구독을 통한 렌털서비스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오픈갤러리는 월 3만9000원의 구독료를 지불하면 잭슨심, 최승윤, 이현열, 류지선, 전미선, 이용석 등 전업 작가 1200명의 작품 3만7000점(1월 기준) 중에서 골라 3개월마다 교체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마음에 드는 그림은 장기 대여나 구매도 가능하다. 오픈갤러리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고객수요가 늘어나 지난해 하반기 렌털서비스 매출액은 2019년 하반기 대비 44.75%, 주문 건수는 26.6% 증가했다”며 “최근 비대면 구독서비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매출액뿐 아니라 고객 수와 작가 계약 체결 건수도 크게 늘었다”고 귀띔했다.
미술 콘텐츠를 소비하려는 온라인 시장을 타깃으로 한 구독서비스인 ‘백그라운드아트웍스’(이하 BGA)도 주목할 만하다. BGA는 월 1만2000원을 내면 구독자에게 매일 밤 11시 한 점의 그림과 에세이를 제공한다. 콘텐츠는 명화부터 현대미술까지 다양하며 온라인 미술 콘텐츠 시장을 타깃으로 했다는 점에서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시작한 BGA는 지난해 작가미술장터 지원 사업을 통해, 구독자들로 하여금 오프라인 공간에서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원화도 구매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기도 했다.
▶앤디 워홀·김환기 등 유명 작가 작품 ‘공구’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소비자보호 우려도
예술을 향유하는 문화 중 하나로 최근 투자자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분야는 바로 ‘미술품 공동구매’다. 현실적으로 수억원에서 몇 천억원을 호가하는 유명작가의 그림을 홀로 소유할 수는 없는 만큼 ‘크라우드 펀딩’ 형태로 함께 소유하는 형태다. 플랫폼별로 1만원에서 10만원을 최소금액으로 책정해 2030세대들도 접근이 용이하다. 추후 미술품 가치가 상승하면 매각 후 지분만큼의 차익을 나눠 가지는 방식으로 부동산 공동구매인 리츠와도 비슷한 개념이다.
부자들의 취미로 여겨졌던 미술품 구매가 최근 3040세대를 중심으로 미술품 ‘아트테크(Art+ Technology)’라는 이름의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미술품 공동구매 역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2018년 10월 아트앤가이드에서 국내 최초로 김환기 화백의 <산월>을 공동구매한 이후 현재까지 ‘아트 투게더’ ‘아트블록(Tessa)’ ‘피카프로젝트’ 등 약 10개의 회사가 공동구매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러한 방식은 신진작가의 작품에 비해 환금성이 용이하고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잘만 고르면 수년 후 작품 가치 상승으로 100% 이상 수익이 가능하다’는 입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생존 작가의 작품을 사면 이자소득세나 양도소득세도 내지 않는다. 비단 시세차익이 아니더라도 직접 미술품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구입 후 학교나 관공서 등에 빌려주고 저작권료를 받는 수익창출도 가능하다. 2018년 11월부터 본격 서비스를 시작한 아트투게더를 통해선 지금까지 국내 투자자 약 6000명이 줄리언 오피, 구사마 야요이, 이우환 화백 등 국내외 유명 작가 작품 54개를 공동구매했다. 렌트·매각 수익금 분배 등으로 서비스 출범 이후 지금까지 투자자들이 거둔 평균 수익률은 22% 정도라고 밝혔다.
공동구매를 하면 작품을 집에 걸어놓을 순 없다. 대신 작품 확인증을 발급받게 된다. 작품을 직접 보고 싶으면 해당 업체의 전시장에 가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작품의 투자 수익은 공동구매 후 재판매로 발생한다. 작품 값이 충분히 올랐을 때 업체에서 소유주들의 동의를 받는 절차를 거친다. 아트투게더에선 재판매 전에 투자자들이 산 작품 조각을 중도 매매할 수 있는 ‘조각거래소’도 운영하고 있다. 주식처럼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의 등장 이면에는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이 있다. 상당수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소유권을 관리하고 있다. 블록체인을 통해 미술품을 거래할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프로비넌스(Provenance·소장 이력)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지다 보니 경매보다 수수료가 낮은 편이다. 경매 업체 소더비나 크리스티의 경매는 거래 수수료가 12~30%로 높은 데 반해, 메세나스 등 블록체인 기반 미술품 매매 플랫폼의 총수수료는 2~6% 수준에 그친다.
그러나 미술품 공동구매에 대해 호의적인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 본연의 감상은 뒷전에 두고 ‘돈이 될 만한 그림에 묻지마 투자’를 조장한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공동구매 비즈니스가 모두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구매 성사까지 도달하지 못해 마감 기한을 연장시키거나, 구매가 됐더라도 재판매가 진행되지 못한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단기에 영업을 종료한 회사도 존재해 구매자들에 대한 보호 정책 마련도 요구된다.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투자자들이 주로 거래하는 아트테크 중개 플랫폼은 금융당국에 투자 인가를 받은 공식 금융 투자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해도 투자자가 법적 보호를 받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국내 미술품 투자 플랫폼은 투자 관련법인 자본시장법이 아니라 민법을 활용하고 있다. 테사의 미술품 분할 소유권 투자는 자본시장법상 투자 상품이 아닌, 미술품을 공동 소유하는 민법상 구매 행위를 기반으로 한다. 테사가 사전에 매입한 작품을 함께 소유하게끔 플랫폼 이용자들과 공동 소유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블록체인 토큰의 제도화 여부도 아직까지 불투명한 측면이 존재한다. 실제 해외에선 블록체인 게임 내 NFT가 16억원대에 팔리기도 했지만, 국내에선 NFT 활용 게임이 제도권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게임물관리위원회는 NFT를 활용한 블록체인 기반 게임 ‘파이브스타즈 for Klaytn’의 등급 분류를 거부하기도 했다. NFT화된 게임 아이템을 외부 마켓플레이스에서 판매할 수 있어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판단에서다.
미술업계 한 관계자는 “미술품 공동구매가 보다 많은 컬렉터의 시장진입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하며 “그러나 버블이 꺼져 그림판매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환금성에 문제가 될 수 있을뿐더러 법적 테두리 안에 완벽히 들어오지 못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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