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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붐에 고성장한 '질로'…빅데이터로 시세 산정

질로는 미국 내 1위 프롭테크 기업으로, AI 기반 주택감정시스템인 ‘제스티메이트’를 기반으로 ‘부동산 업계의 아마존’으로 성장했다.
‘질로 스크롤러(Zillow Scroller)’, 미국에서 프롭테크(부동산+기술) 업계 1위 질로의 서비스를 단골로 이용하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미국인 10명 중 1명은 매일 질로닷컴에 접속한다. 지난해 질로 방문자 수는 연인원 96억 명으로 2019년보다 19% 늘었다. 질로는 약 1억3500만 채의 주택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전체 주택 수의 97% 수준이다. 2011년 나스닥에 상장한 질로 주가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기 시작한 작년 3월, 26달러대에서 올해 4월 14일 139.28달러로 약 1년 새 5배 넘게 뛰었다. 질로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2% 증가한 33억3982만달러(약 3조7000억원)를 기록했다. 주된 수익은 중개업자, 임대 사업자와 건설 업자, 대부 업체 등이 내는 광고료다.

블룸버그는 질로를 코로나19를 계기로 급성장한 온라인 화상회의 기업 ‘줌’에 빗대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직접 방문하는 일이 힘들어지면서 매물을 비대면으로 확인하려는 실수요뿐 아니라 자기 집에만 오래 머문 탓에 이색적인 집을 구경하고 싶은 수요까지 겹쳐 질로 이용자가 폭증한 것이다. 지난해 7월엔 월간 사용자가 2억4000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6년 설립해 ‘부동산 업계의 아마존’으로 성장한 질로 앱에 접속해 주거용 부동산 매물의 주소만 넣으면, 주택 가격, 주택 내부와 외부 사진, 매매 및 임대 거래 내역, 적정 임대료, 인근 학군 정보와 평점, 주택담보대출 상환 추정액, 3D 홈투어 등 주요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 이용자의 검색 기록 등을 분석해 적합한 매물까지 추천한다.

질로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는 서비스는 아마존의 아마존웹서비스(AWS) AI(인공지능)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개발한 일종의 주택감정시스템인 ‘제스티메이트’다. 1억 건 이상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택별 적정 매매가와 임대료를 산정해주고 가격 추이 데이터를 시계열로 제공한다. 미국에서 제스티메이트는 마치 일반 명사처럼 사용된다. 질로의 자체 감정 가격은 주요 거래 표준으로 기능하고 있다.

제스티메이트가 미국에서 크게 호응받는 이유는 규격화, 균일화된 아파트가 많은 한국과 달리, 미국은 개성이 강한 단독 주택이 많아 부동산 매물에 대한 가격 예측이나 품질 확인이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같은 아파트의 903호나 801호는 집 소유권만 다를 뿐 모두 동질 상품이지만, 주택은 매물마다 목조 주택이냐, 철골 주택이냐, 층수, 수영장, 차고 수량, 부지 면적 등 수많은 디테일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매물 거래 시 상태가 천차만별이라 리스크가 커 우리나라에는 없는 ‘주택 검사(Home Inspection·주택 거래 시 전문 장비를 동원해 집의 상태를 사전 검사하는 과정)’ 제도가 아예 있을 정도인데, 이러한 거래에 드는 비용을 질로가 제스티메이트를 통해 획기적으로 줄였다"라고 분석했다. 미국 특성의 부동산 거래 문제를 첨단 기술로 해결한 것이다.

미국이 한국보다 중개수수료도 몇 배로 비싸고, 국내에선 관행화된 구두계약이 아닌 전속계약을 하고 있어 부동산 거래 부담이 큰 현실도 질로의 고성장 배경으로 꼽힌다. 주택 매매 시 필요한 정보가 상대적으로 훨씬 많은 미국에서 큰 소비자 편익을 줬기 때문에 호응이 높았다는 것이다.

질로의 질주는 글로벌 프롭테크 시장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전 세계 프롭테크 기업에 대한 투자액은 2011년 1억8000만달러(약 2007억원)에서 지난해 72억달러(약 8조원)로 10년간 40배 이상 급증했다.

 
이용자는 질로 앱을 통해 지도상 다양한 매물의 사진과 영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 질로
◇국내에선 이익집단 갈등이 장애물

국내에서도 질로 같은 프롭테크 기업의 고성장이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아파트처럼 규격화된 매물이 많아 제스티메이트 수준의 알고리즘 개발 수요가 크지 않은데다 여러 규제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분석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은 "미국은 프롭테크 기업이 종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법과 제도 시스템이 구축됐지만, 한국에선 그 업무를 하기 위해 기업이 감정평가업, 부동산중개업, 대부업에 각각 등록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전문자격사를 고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집단 이기주의 때문에 한국에선 자신의 업역을 침해하는 새로운 IT 서비스 등에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도 시세 제공을 두고 감정평가 논란이 인 적이 있지만 법원은 ICT 업계의 손을 들어줬다. 2017년 미국 주택 보유자들은 제스티메이트가 자신들의 매물을 시세보다 싸게 평가하고 있으며, 감정평가사가 아님에도 불법으로 감정평가를 하고 있다고 질로를 고발했다. 그러나 현지 법원은 "제스티메이트는 (부동산 매매에서) 단순히 시작점(starting point)에 불과하므로 이들이 제공하는 시세가 주택 구입자를 혼란에 빠뜨릴 수 없으며, 이를 감정평가업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국내 프롭테크 업체들이 가장 큰 시장인 아파트에 집중하고 있어, 다양한 특성과 변수가 있고 주택 시장이 큰 미국과는 달리 고도화된 알고리즘을 개발하려는 요인이 적다는 지적도 있다. 아파트의 경우 시세가 많이 공개돼 있어 이를 취합해
 

 분석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간편하다. 부동산 정보제공 업체 직방 관계자는 "아직은 제스티메이트 같은 개인 주택 감정 시스템은 직방에는 없다"며 "국내 부동산 시장은 아파트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 보니, 우선은 정형화된 아파트 관련 알고리즘을 고도화해 보다 정확한 시세를 제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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