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남산캐슬' 대지각변동 ③ 신세계가(家)
이명희·정유경 모녀, 신축공사 '첫 삽'
이명희 집값 1년 만에 18억이나 뛰어
정유경, 510억대 8필지 보유…영토 확장 중
한남동은 서울에서도 재벌들이 선호하는 '그들만의 세상' 같은 곳이다. 삼성가(家)에 이어 신세계가(家) 역시 대를 이어 한남동에 둥지를 틀고 그 '영토'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막내딸 이명희 신세계 회장에 이어 3세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역시 한남동 금싸라기 땅에 토지와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철옹성처럼 서있는 이명희 회장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정용진 부회장 집이 자리잡고 있다. 한 블록 아래 정유경 총괄사장 소유의 땅에선 새집짓기가 한창이다.
요즘 서울 하얏트호텔 아래 한남동과 이태원동 일대 이른바 '남산캐슬'에 거주하는 재벌 가운데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남산캐슬 일대에 동시다발로 공사가 진행되는 곳만 9군데에 달한다.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재벌은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이다. 정 총괄사장은 최근 3년새 983.6㎡(298평)의 땅을 추가로 사들였다. 매입가는 165억 원에 이른다. 이미 갖고 있던 부지에 더해 정유경 총괄사장이 한남동에만 보유하고 있는 땅만 8필지로 모두 3097.1㎡(937평)에 달한다. 8필지 땅값을 합산하면 509억8600만 원에 달한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정 총괄사장이 2018년 매입한 한남동 74X-X번지(아래 [그림] 속 ①)엔 원래 단독주택이 있었는데 철거됐다. 지난해부터 재건축 공사에 들어간 상태다. 이곳은 故방용훈(지난 2월18일 사망) 전 코리아나호텔 회장의 집이었다. 대지면적은 639㎡(193평). 2018년 1월 방 전 회장은 이 주택을 매입한지 30년 만에 정 총괄사장에게 110억 원에 매각했다.
땅 주인은 딸 정유경, 건축주는 어머니 이명희
지난 8일 재건축 공사 현장에 가보니 높은 가림막이 세워져 있어 공사장 내부를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그나마 좁은 틈 사이로 안쪽을 보니 원래 있던 집은 철거되고 터파기가 돼 있다. 공사기간은 2020년 8월부터 2021년 8월 31일. 그런데 무슨 사연이 있는지 현재는 공사가 중지된 상태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 토지는 정유경 총괄회장의 소유인데, 건축주는 이명희 회장 이름으로 건축허가를 받았다는 것. 공사장 외벽에 설치된 공사안내판에 적힌 건축주 '이명희' 이름은 하얀 테이프로 가려졌다. 이 회장이 '유명인' 이어서 이름을 감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용산구청 건축과 담당자는 "건축허가 표기에서 건축주 이름을 가리더라도 법규상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정유경 총괄사장은 이 부지와 바로 붙어있는 한남동 74X-XX(128.9㎡, 39평), 74X-X(627.4㎡, 190평), 74-8(1002.6㎡, 303평)번지 등(위 [그림] 속 ②) 토지 3필지도 소유하고 있다. 총 대지면적은 1758.9㎡(532평)에 이른다. 그는 이 땅을 2007년 7월 한꺼번에 매입했다.
532평에 달하는 이 넓은 부지엔 이명희 회장 명의의 주택이 있다. 이 저택은 2021년 기준 공시가격이 295억3000만 원에 달한다. 전년도(277억1000만원)에 비해 18억2000만 원 상승했다.
정유경, 건축허가 신청 7개월 만에 취소, 왜?
이 부지 바로 맞은편에 있는 네 필지(한남동 74X-XX, 73X-XX, 74X-X, 73X-OO번지) 역시 정 총괄사장의 소유다. 정 총괄사장은 이중 74X-X와 73X-OO번지([그림] 속 ④) 344.6㎡(104평) 규모의 이 두 필지를 지난해 11월30일 55억 원에 사들였다. 이 부지엔 지난해 4월 건축허가를 신청했다가 7개월 후인 11월 취소했다. 용산구청에 확인한 결과 이명희 회장도 정 총괄사장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 명의로 건축허가를 신청했다가 취소했다. 취소 사유는 알 수 없다.
74X-XX(298.6㎡, 91평), 73X-XX번지(56㎡, 17평)([그림] 속 ③)에 있는 주택은 지은 지 오래된 낡은 집으로 현재 누가 거주하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기자가 지난 6일 이곳을 찾았을 때 누군가 마당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 집 바로 옆은 최태원 SK회장이 4월초 신축공사를 마치고 입주한 저택이다.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집은 정 총괄사장 소유 부동산에서 불과 한 블록 떨어진 가까운 곳에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이곳에 저택 두 채를 보유하고 있다. 이 두 채의 공시가격을 합치면 415억7000만 원에 달한다.
2018년 1월 동생 정유경 총괄사장으로부터 73X-XX(634㎡, 192평), 73X-XX(506㎡, 153평)([그림] 속 ⑤) 두 필지를 샀다. 거래가액은 161억570만 원. 정 부회장은 이 부지 일대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단독주택(연면적 2049.28㎡, 619.91평)을 지어 2017년 11월 건물 등기에 올렸다. 정 총괄사장 명의의 땅이 포함된 대지에 먼저 집을 짓고, 나중에 동생에게서 땅을 매입한 셈이다. 국토부 개별주택가격 공시에 따르면 이 저택은 2020년 기준 279억 원에 이른다.
이와 함께 정 부회장은 한남동 73X-XX번지([그림] 속 ⑦)에도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이 곳은 이명희 회장이 2013년부터 소유해 오다가 2018년 정 부회장이 매입했다. 이 회장은 이 집을 130억 원에 사서 5년 5개월 만에 161억2700만 원에 아들에게 팔았다.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340.72㎡(103평) 규모의 이 집은 2020년 기준 개별주택공시가격이 136억7000만 원이다.
이 집에는 2018년 10월부터 2019년 5월까지 미국 석유화학기업 엑손모빌의 한국법인 엑손모빌코리아가 근저당권을 설정했었다. 그라함 제프리 도즈 엑손모빌코리아 전 대표가 전세권 대신 근저당권을 설정하고 전세로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누가 거주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정 부회장은 2011년 5월 플루티스트 한지희 씨와 재혼하면서 경기도 성남시 백현동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4467㎡(1351평) 부지에 연면적 3049.10㎡(922평) 규모인 이 저택은 2020년 기준 개별주택공시가격이 149억3000만 원이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2017년 이명희 회장의 한남동 집 바로 옆에도 새 집을 지었다. 정 부회장의 거주지가 현재 한남동인지, 백현동인지는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웠다. 기자는 지난 8일 판교신도시로 불리는 백현동의 정 부회장 집을 찾았다. 당시 제네시스 차량 한 대가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저택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이 저택은 고급스러운 외관을 갖췄다. 바로 뒤편엔 남서울C.C(골프장)가 있다.
이명희 회장의 한남동 저택도 범상치 않다. 아래편으론 딸 정유경 총괄사장 집이 내려다보인다. 양옆으론 2017년 지어진 아들 정용진 부회장 집이 있다. 어머니 집을 아들 집이 호위하는 모양새다. 한남동 73X-XX([그림] 속 ⑥)에 있는 이 회장 집은 지하 2층, 지상 2층으로 연면적 2604.78㎡(788평) 규모다. 2020년 개별주택공시가격은 287억4000만 원에 달했다. 이 회장 역시 정 부회장과 비슷한 시기에 이 집을 지었다. 두 집의 등기일도 같은 날(2017년 11월 24일)이다. 정유경 부회장 부지에 현재 짓고 있는 주택과 마찬가지로 신세계건설이 시공했다.
지난 6일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한남동 저택을 찾았다. 오후 5시경 갑자기 정문이 열리더니 경호원 한 명이 부리나케 집 앞으로 달려 나와 길을 막고 자세를 갖췄다. 6인승 승합차 한 대가 이 회장 집 앞을 지나려다 경호원의 제지에 멈추고 대기했다. 잠시 후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집 쪽으로 다가오더니 경호원 호위를 받으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담장이 높아 내부는 전혀 볼 수 없었다. 다만 정원에 설치된 큼지막한 미술 조형작품 일부가 눈에 들어왔다. 거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매우 독특한 형상의 이 조형작품은 프랑스 출신 조각가이자 설치 미술가인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Maman)' 시리즈로 추정된다.
이 시리즈는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도쿄 롯폰기힐스, 캐나다 오타와 등에도 전시돼 있는 유명작품. 'Maman'은 프랑스어로 '어머니'를 뜻한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고난 속에서도 아이들을 키워냈던 어머니의 강인함을 어미 거미 작품에 담아냈다고 한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마망'을 만든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이 거미 작품은 나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시다. 그녀는 나의 절친한 친구였다. 마치 거미처럼, 나의 어머니 또한 방직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한, 거미처럼 아주 현명했다. 나의 어머니는, 이렇듯 한 마리의 거미처럼 꼭 필요하며 누군가를 보호할 수 있는 존재였다."
이 '마망(Maman)' 시리즈 중 한 작품은 한남동 삼성 리움 미술관에도 2005~2012년까지 전시된 적이 있다.
신세계 관계자는 해당 미술작품에 대해 "루이스 부르주아가 아닌 다른 작가의 다른 작품"이라며 "회장님의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하기 어렵다"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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