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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찾아간 수표로 골목에서 ‘우려’ 곱씹다

5년 전 서울 중구 수표로의 점심시간은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로 붐볐다. 고깃집, 횟집, 라면전문점 등 먹을 만한 집들이 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작 5년 만에 이곳은 크게 달라졌다. 직장인들은 줄었고, 활력은 예년만 못하다. 간판을 유지한 집이나 바꿔 단 집이나 새로 단 집이나 ‘희망’보단 ‘우려’를 입에 담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을지로의 명소 ‘골뱅이 골목’으로 이어지는 수표로에서 자영업계의 위기를 찾아봤다. 


수표로에서 만난 상인들의 얼굴엔 웃음기가 별로 없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2015년 봄, 당시 충무로 남산스퀘어 옆의 왕복 2차로(수표로) 일대는 점심시간이면 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참고 : 인제대 백병원 사거리 전까지 약 300m.] 그때 경기가 유달리 좋았던 건 아니었다. 한때 이 지역을 먹여 살리다시피 했던 인쇄업종은 사양산업의 길로 접어든 지 오래였다. 영화映 덕에 한집 건너 하나씩 들어선 카메라 매장도 ‘영화榮華’를 잃고 있었다. 콕 집어 말하면 ‘저성장’이었다. 

그럼에도 점심시간이 되면 직장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 안에는 수표로에 회사가 있었던 더스쿠프 취재팀 기자들도 있었다. 직장인들의 허기를 달래줄 먹거리는 다양했다. 남산스퀘어 옆 수표로 초입의 고깃집과 횟집은 손님을 맞는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특히 저녁엔 주당들의 아지트로 애용되면서 수표로 입구를 밝히는 역할도 겸했다. 

사거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빵집과 커피전문점이 고소한 냄새를 경쟁하듯 풍겼다. 길 건너편에 있던 국밥집과 우동집, 반지하의 라면집은 점심을 얼른 때우고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을 위한 패스트푸드점이었다. 

젊은층을 겨냥한 일본식 도시락 전문점도 있었다. 시간이 남는 이들이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 공간도 충분했다. 하와이풍의 인테리어를 한 로컬브랜드 커피전문점과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왕복 2차로를 두고 경쟁했다. 어느 곳 하나, 비슷한 메뉴나 비슷한 분위기는 없었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2020년 5월의 평일 점심시간 풍경은 많이 달랐다. 가장 큰 변화는 부쩍 줄어든 유동인구였다. 코로나19 영향이 없지 않을 테지만, 수표로 가게들의 기본 수요였던 직장인들이 많이 감소했다. 

고시텔과 명동 상인들의 리어카를 보관하던 주차장이 있던 빌딩과 다양한 중소기업들이 입주해 있던 빌딩이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를 겨냥한 비즈니스호텔로 바뀐 게 직장인 감소에 한몫했다. 

사무실 빠지면서 상권도 냉랭

상인들은 “관광객들은 명동에서 소비하고 호텔에선 숙박만 하기 때문에 상권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입을 모았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까지 겹쳐 관광객들도 확 줄어 수요는 더더욱 없었다. 

그 때문인지 간판을 바꿔 단 곳들도 꽤 보였다. 앞서 언급했던 수표로 초입에 있던 횟집은 해장국집으로 바뀌었다. 주인은 그대로였지만 장사가 예전만 못해 업종을 변경했다. 강준영(이하 가명) 사장은 “아무래도 저녁 손님과 단체 손님이 있어야 유지가 되는데, 접대나 회식 자체가 많이 사라지면서 점심장사 위주로 바꿨다”면서 “손 털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여기 들어올 때 낸 권리금을 포기할 수 없어 버티는 중”이라고 털어놨다. 


사무빌딩이 호텔로 변하면서 수표로 상인들의 기본 수요였던 직장인들이 꽤 많이 줄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수표로 초입의 또 다른 명물이었던 고깃집은 5월 말께 장사를 접는다. 황선우 사장은 “소비패턴이 바뀌고, 근무시간이 줄면서 수익이 감소했다”면서 “여기에 오피스 빌딩이 호텔로 바뀌면서 기본 수요였던 직장인들까지 줄어들어 버티는 게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인테리어 비용에만 1억원이 넘게 들었는데, 권리금은커녕 돈을 들여 원상복구까지 해주고 나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곳을 떠나려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이는 일본식 도시락 가게를 인수해 고추장찌개집을 새롭게 열었다. 또  다른 이는 젊은층을 겨냥한 이발소를 론칭했다. 수표로에 발을 들여놓은 젊은 피들은 매장의 크기나 인테리어, 혹은 위치보단 상품성과 서비스에 집중했다.

그래서인지 일부 업종에선 경쟁이 치열해졌다. 빵집과 커피전문점이 나란히 마주 보는 풍경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몇 블록 아래엔 빵과 커피를 함께 파는 로컬 프랜차이즈가 들어서면서 앞으로의 변화를 예고하는 듯했다. 

고작 5년 만이었다. 변하는 무쌍했고, 여기에 대응하는 상인들의 방식은 천차만별이었다. 일부는 출구를 찾았고, 일부는 틈새를 공략했다. 기본 수요인 직장인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상권이 변하고 있다는 건데, 중요한 건 그 변화에 ‘희망’이 섞여 있느냐다.
 


수표로에서 28년간 소매점을 운영해온 박상진 씨는 이렇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수요(직장인)가 많이 줄었다는 건 그만큼 외부손님을 끌어와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새로 가게를 여는 젊은 사람들의 각오도 남다른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겠나. 기본 수요가 있을 때도 10년이 채 되기 전에 간판을 바꿔 단 곳들이 여럿이다. 고작 28년 장사한 내가 여기서 가장 오래된 상인 중 하나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충무로에 활력을 주던 인쇄산업과 영화산업도 수그러든 지 오래다. 나이 든 내가 봐도 앞으로 장사 환경이 더 좋아질 걸로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만이 문제인 건 아니란 거다. 

실제로 수표로에서 만난 자영업자 중 얼굴에 웃음기나 활기를 띤 이들은 거의 없었다. 새로 가게를 연 곳도 마찬가지였다. 5년 전과 비교해 간판보다 더 많이 달라진 모습 중 하나다. 과연 수표로만의 이야기일까. 

http://www.thescoop.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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