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중심인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컴퓨팅(Cloud Computing), 빅데이터(Big Data), 모바일(Mobile) 등 신기술의 발전은 전 세계 유통혁명으로 이어졌다. 아마존과 알리바바 등 온라인 쇼핑몰이 글로벌 유통거인으로 급부상했고, 그 대척점에 선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의 장기화로 오프라인 매장은 폐점 공포가 현실이 됐다.
미국의 대형 백화점 메이시스(Macy’s)는 지난해 초 125곳을 폐점하고 직원 2000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2016년부터 이미 100여 개 매장의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구조조정 중이다. 그에 앞서 2018년 또 다른 대형백화점 시어스(Sears)는 파산신청을 하고 150개 매장을 폐쇄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코어사이트 리서치에 따르면 2019년 미국에서만 9800여 개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 지난해엔 2만5000여 개의 소매점이 폐점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대 장난감 업체 ‘토이저러스’와 의류브랜드 ‘포에버21’도 무너졌다.
국내 시장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해 언택트 문화가 안착되며 오프라인 유통업계에 먹구름이 자욱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을 살펴보면 지난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사들의 명암이 확연히 갈린다. 국내 최대 쇼핑축제인 ‘코리아세일페스타’가 열렸던 지난해 11월 매출 증감률만 놓고 보면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11월 중순 이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매출이 급감하며 전체 매출이 감소했다. 반면 온라인 업체는 코리아세일페스타와 연계한 할인행사 등으로 전반적인 상품군에서 매출이 상승하며 전년 동월 대비 매출이 증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1년 전(12조8521억원)보다 17.2% 증가한 15조631억원이었다. 온라인 쇼핑 거래액이 15조원을 넘어선 것은 2001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처음이다. 유통업계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에 대형 오프라인 점포를 내는 것보다 온라인 쇼핑몰 같이 빠른 배송체계를 갖추는 게 경쟁력의 핵심”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의 고객은 영구적으로 변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올 신년사 중 한 대목이다. 정 부회장은 “불경기는 기회가 적어진다는 의미이지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수익성 있는 사업 구조를 만들고 고객에 대한 ‘광적인 집중’을 통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화된 고객의 요구에 광적으로 집착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올해는 전통적인 오프라인 유통 공룡들의 반격이 예상된다. 내부적으론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신규 투자를 자제하며 체력을 비축했고, 외부적으론 치료제와 백신 등이 대반격의 버팀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 2분기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탓에 해당 기간 실적 반등 폭이 클 것이란 기대감도 큰 상황이다.
대형 유통그룹들은 기존 점포를 온라인 배송에 맞게 재구성하거나 IT 기술을 투입해 전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새로운 플랫폼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다. 일례로 기존 매장을 배송기지로 전환해 당일배송, 즉시배송 등 특화된 서비스로 반격에 나서는 모양새다.
롯데쇼핑은 현재 백화점 35개점(국내 31개, 해외 4개), 아웃렛 21개점, 마트 179개점(국내 116개, 해외 63개), 온라인몰 등을 비롯해 홈쇼핑, 컬처웍스, 하이마트 등 유통 전 분야에서 사업영역을 확보한 상황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지역 밀착 유통망을 중심으로 온라인 물류와 배송 차별화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우선 롯데백화점은 오프라인 점포만 제공할 수 있는 고객경험 차별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점포 유형별 특성에 맞춰 MD 및 고객 전략을 세분화해, 점포별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예정이다. 새로운 고객층인 MZ세대를 겨냥한 마케팅 활동도 강화한다. 또한 롯데백화점 동탄점, 아웃렛 의왕점이 올해 오픈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데마트는 점포를 자동화해 주문 2시간 이내에 상품을 받을 수 있는 바로배송 서비스를 단계적으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 시스템의 핵심 축은 ‘스마트스토어’다. 고객이 상품을 주문하면 직원들이 점포에서 장바구니에 담은 뒤 컨베이어벨트로 이송하고, 후방에서 포장 과정을 거쳐 배송할 수 있도록 만든 자동화 점포다. 지난해 중계점과 광교점에서 서비스를 진행한 데 이어 올해 2곳을 추가 운영할 계획이다. 배송 전 단계인 포장에 주안점을 두고 자동화 패킹 설비를 설치한 ‘세미다크스토어’도 올해 29개 점포로 확대해 점포의 물류창고화를 가속화할 방침이다. 새벽배송은 별도 온라인 전용센터에서 진행해 배송 사각지대를 없애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이마트와 SSG닷컴을 결합하는 모양새다. 온라인몰인 SSG닷컴 네오센터에서 새벽배송을 전담하고, 점포에서는 피킹앤드패킹(PP)센터를 구축해 당일배송에 대응하는 이원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첫 매장형 물류센터 ‘EOS(Emart Online Store)’ 청계천점을 열었다. 이 점포는 최대 20㎞ 거리에 있는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상품을 주문하면 2시간 내 배송한다. 이를 위해 자동화된 상품 분류, 배송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런가 하면 현재 전국 이마트 매장 110여 곳에 PP센터가 설치돼 하루 최대 배송 처리 물량이 1년 새 20% 늘어난 6만 건으로 확대됐다. 이밖에 SSG닷컴은 이마트·신세계백화점 등 관계사들과 협업해 온라인 서비스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일례로 ‘매장 픽업서비스’의 경우 온라인에서 주문하면 가까운 이마트 매장에서 당일 상품 수령이 가능하다. SSG닷컴 앱을 통해 주문과 결제를 한번에 진행하는 ‘쓱오더’도 눈여겨볼 서비스다. 스타필드에 입점해 있는 유명 맛집에 줄을 서지 않아도 쓱오더를 통해 이용이 가능하다. 현재 스타필드 고양점을 시작으로 하남, 코엑스몰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매장 리뉴얼에 무인자동화도 등장
이마트는 오프라인 점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객 체험형 공간으로의 리뉴얼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해 리뉴얼한 월계점은 전체 면적에서 마트가 차지하는 공간을 30%대로 줄였다. 그 대신 나머지 면적을 패션, 서점, 가전 등 전문점과 인기 식음료 브랜드로 채웠다. 마트만으론 손님을 모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현대식품관 투홈’으로 새벽배송 시장에 진입했다. 백화점 식품관 상품을 새벽에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가입자가 약 15만 명까지 늘었고, 매출도 목표치를 20% 넘게 달성했다. 특히 30대 여성 고객 중심으로 관심을 모아 재구매율이 69%를 기록했다. 현대백화점은 오는 2월 국내 세 번째 초고층 건물인 파크원(333m·69층) 상업시설에 지하 7층~지상 8층, 영업면적 8만9100㎡ 규모의 여의도점을 개장한다. 이곳엔 서울 최대 백화점 위상에 걸맞게 다양한 명품 브랜드가 입점할 예정이다.
또한 세계 최초 무인자동화 매장 아마존고(GO)의 기술을 활용한 매장도 입점해 ‘저스트 워크 아웃(상품을 들고 나가기만 하면 자동으로 결제가 이뤄지는)’ 서비스가 시행될 예정이다. 20·30대 밀레니얼 세대가 많은 지역 상권 특성에 맞춘 대형 체험형 매장인 밀레니얼관, 3300㎡ 규모 실내 정원과 실내 폭포 등 도심 속 휴식 공간도 포함돼 있다.
그런가 하면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 1월 4일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디지털 비전 선포식’을 열고 유통, 패션, 리빙·인테리어 등 3대 핵심 사업의 맞춤형 성장 전략과 함께 성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 신수종 사업 진출 내용을 담은 중장기 계획 ‘비전 2030’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고객의 모든 일상을 책임지는 종합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변신해 지난해 20조원 규모인 그룹 연 매출을 10년 뒤 40조원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비전 2030은 향후 10년간 그룹의 지속 성장을 위한 사업 추진 전략을 구체화한 게 특징이다.
백화점·리바트 등 계열사별 맞춤형 성장 전략과 그룹 사업 다각화 전략을 투 트랙으로 추진한다. 유통 부문은 백화점·아웃렛·홈쇼핑·면세점을 주축으로 현재 연 13조2000억원대인 매출 규모를 2030년에는 29조원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현대백화점과 현대아울렛은 온·오프라인 채널 융·복합으로 경쟁력을 키운다. 특히 이커머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더현대닷컴’과 현대식품관 투홈의 전문화를 추진하고 라이브커머스 사업도 확대한다. 뷰티·리빙·패션 등 차별화된 상품을 파는 ‘근린형 유통 플랫폼’과 상권 특성에 맞는 식음료(F&B) 매장을 운영하는 ‘푸드 플랫폼(셀렉트 다이닝)’ 등에도 진출한다.
현대홈쇼핑은 패션·뷰티 전문 몰 론칭,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사업 진출, 미디어커머스 강화를 검토하고 있다. 패션 부문은 새 프리미엄 패션 브랜드 론칭과 온·오프라인 유통 채널 확대에 주력한다. 식품 계열사 현대그린푸드는 맞춤형 건강식 사업을 확대하고 케어푸드 상품 다양화에도 속도를 낼 예정이다. 특히 급식 부문에서 맞춤형 건강 식단과 일대일 영양 상담 등을 제공하는 건강 경영 프로그램을 선보일 계획이다. 리빙·인테리어 부문은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스마트홈’ 구현에 나선다. 헬스케어 분야에선 건강기능식품과 가정용 의료기 등 고객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는 ‘셀프 메디케이션(Self-Medication)’ 연관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고 현대백화점 헬스케어 스토어 등 온·오프라인 헬스케어 전문 플랫폼 사업 진출도 검토할 계획이다.
▶온라인으로 고객과 산지 농민 직거래
홈플러스 또한 온·오프라인을 결합한 ‘올라인(All-Line)’ 유통모델을 구축했다. 오프라인 점포를 온라인 물류거점으로 전략화하는 한편 온라인 수요가 높은 지역에는 점포 내의 유휴공간을 활용한 ‘풀필먼트 센터’를 조성해 대응하고 있다. 최근엔 새해 ‘최상의 맛’ 캠페인을 시작으로 신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온라인 ‘산지직송관’을 오픈했다. 고객이 상품을 주문하면 생산자가 산지에서 고객에게 직접 택배를 발송하는 일종의 ‘직거래 장터’ 시스템이다. 농가는 판로 개척을, 고객은 집에서 제철 식품을 가장 신선한 상태로 받아볼 수 있다. 홈플러스는 검증된 농가 영입을 위해 오프라인 바이어와 온라인 MD로 구성된 산지직송팀이 직접 산지를 방문, 생산자를 영입했다. 입점 후에는 상품 품질관리를 비롯해 판매, 배송, 온라인 페이지 제작, 광고까지 모든 영역에서 농가를 지원할 방침이다. 올해 전국 200개 농가와 협업해 산지직송을 확대할 계획이다.
편의점·슈퍼마켓 사업이 주력인 GS리테일은 GS홈쇼핑을 흡수 합병하는 방식으로 온라인 커머스 역량 강화에 나섰다. GS홈쇼핑은 지난 3분기 기준 전체 거래액에서 모바일 비중이 57%에 달할 만큼 온라인 사업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GS홈쇼핑의 온라인몰인 GS샵을 편의점과 슈퍼마켓의 온라인 매장으로 활용하고 GS홈쇼핑은 GS리테일의 전국 점포망과 물류 인프라를 이용해 배송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