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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매장의 상식이 뒤집힌다

'토이스토리', '토르', '스타워즈' 등의 주인공들이 외계에서 지구의 월마트로 물건을 픽업하러 옵니다. 광고를 통해 월마트에서 강조한 건 ‘클릭 앤 콜렉트(Click and collect, 온라인 주문 후 픽업)’였습니다. 온라인 커머스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월마트는 온라인 커머스가 아니라 온라인 커머스와 오프라인 매장을 연계한 옴니 채널(Omni-channel)을 지향한다는 뜻입니다.  
 
옴니 채널은 단순히 온라인 판매 채널을 늘리는 멀티 채널(Multi-channel)과는 다릅니다. 멀티 채널은 판매처를 다양화해 매출 접점을 늘리는 유통 방식입니다. 판매가 우선이라 채널 간 연계성을 고려하진 않죠. 반면, 옴니 채널은 다양한 유통 채널을 하나로 연계해 고객 접점을 확대하고 고객 편의를 높이는 개념입니다. 고객 관점에서, 고객 중심으로 유통 채널을 설계하는 거죠. 그래서 멀티 채널과 달리 옴니 채널에서는 온라인에서 구매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픽업을 하거나, A지점에서 구매한 제품을 B지점에서 반품하는 등의 고객 경험이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하니 오프라인의 경쟁력이 살아납니다. 물론 자체 온라인 커머스가 없는 오프라인 리테일에도 강점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고, 제품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쇼핑하는 즐거움이 있죠. 하지만 온라인 커머스와의 대결 구도에서 사실상 온라인 커머스가 판정승을 거두었습니다. 강점 대 강점으로는 판세를 뒤집기 어려워 보이는데, 옴니 채널을 구축하니 오프라인 리테일의 강점이 온라인 커머스 업체에는 없는 차별점으로 바뀝니다.  
 
옴니 채널이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상식을 뒤집고 변화를 이끄는 출발점이라면, 옴니 채널로 가능해지는 변화는 무엇일까요?
 

변화의 진화 #1. 매장에서 매'장'으로 - 공간의 구성이 달라진다 

매장은 '물건을 파는 장소'입니다. 한자로는 '팔 매(賣)'와 '마당 장(場)'을 쓰죠. 그동안 오프라인 매장은 이 뜻에 걸맞는 곳이었습니다. 물건을 사는 장소로써 기능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커머스가 일상에 침투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은 이름값에 충실하지 못한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이 온라인 커머스에서 물건을 샀으니까요. 온라인 커머스 업체에 밀려 고전하던 월마트, 타깃, 베스트바이 등의 오프라인 매장은 태세를 전환합니다. '물건을 파는(賣) 곳'이 아니라 '물건을 두는 장소(場)'에 초점을 맞추면서 배송 거점의 역할을 부여한 거죠.  
 
옴니 채널로 업그레이드한 후 매장의 역할을 변화시키니 배송 경쟁력이 생깁니다. 온라인 주문이 들어오면 멀리 위치한 물류 센터가 아니라 주문자와 가장 가까운 매장에서 배송하기 때문이죠. 참고로 월마트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10마일(약 16km) 이내에 거주하는 인구가 90%, 타깃은 75%, 베스트바이는 70% 이상입니다. 그래서 매장에서 배송 서비스를 하면 아마존도 하기 어려운 당일 배송이 가능해집니다. 타깃의 경우 온라인 주문의 95%를 물류 센터를 대신해 각 오프라인 매장이 소화했습니다.  

반대의 방식도 가능합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배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주문한 고객이 매장을 방문해 직접 물건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클릭 앤 콜렉트(Click and Collect) 또는 BOPIS(Buy Online Pick-up In Store)라고 부르는 방식입니다. 오프라인 매장 내 픽업 존을 마련하는 건 기본이고, 일부 매장은 24시간 픽업할 수 있는 키오스크를 설치해 두기도 합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에는 '커브사이드 픽업'이 보편화되고 있죠. 커브사이드 픽업은 고객이 매장에 들어갈 필요 없이 주차장에 차를 대면 직원이 물건을 차로 물건을 가져다주는 서비스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오프라인 매장이 온라인 커머스의 또 다른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자처하기 시작합니다. 온라인 커머스의 아쉬운 점 중 하나는 물건을 구매할 때 실물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막상 구매한 후 마음에 들지 않아 반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온라인 커머스 반품률은 25~30% 수준으로 오프라인 매장의 반품률보다 3배 가량 높은 정도죠. 문제는 반품할 제품을 포장해야 하고, 배송 서비스를 신청해야 하는 등 반품하기가 은근히 귀찮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이 이 틈을 파고들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 내에 반품 코너를 마련하고, 반품을 하러 온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매장으로 유입될 수 있게 하는 거죠. 이를 위해 옴니 채널의 접근을 넘어 경쟁사와 손잡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의 중저가 백화점 '콜스(Kohl's)'는 아마존과 손잡고 아마존에서 주문한 물건의 반품을 받아줍니다. 실험적으로 시도한 시카고 매장의 경우 매출 상승률은 10%, 신규 고객 유입률은 9%로 미국 전역 평균 대비 각각 2배와 9배가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결과에 힘입어 아마존 반품 서비스를 전국 매장으로 확대했죠.  
 
이처럼 온라인 커머스와 유기적으로 연계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이 바뀌었습니다. 매장의 뒤편을 물류 센터처럼 활용한다든지, 입구 쪽에다가 픽업이나 반품 코너를 마련한다든지, 매장 대신 주차장의 면적을 늘린다든지 하면서 매장의 제품 진열 공간 비중을 줄였습니다. 그동안 주력했던 판매(賣)의 기능을 내려놓고, 온라인 커머스와 공생할 수 있도록 물건을 집적하고 보관하고 배송하는 마당(場)으로써의 역할을 강화한 거죠. 오프라인의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또 다른 방향의 실험적인 진화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변화의 진화 #2. 매장에서 매(장)으로 - 현장의 경험이 사라진다

커피가 아니라 공간을 판다고 했던 '스타벅스'가 변했습니다. 공간이 아니라 커피만을 파는 매장을 오픈한 거죠. 2019년 11월, 뉴욕에 픽업 전용 매장인 '스타벅스 픽업'의 첫 매장을 오픈한 이후 2022년 말까지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에 300여 개의 픽업 전용 매장을 열겠다는 계획입니다. 스타벅스 픽업은 테이블과 의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주문도 할 수 없는 매장입니다. 모바일 앱으로 주문하고 음료를 픽업하는 데만 집중한 모델입니다. 매장에서 '매'의 기능만 살리고 '장'의 역할을 내려놓은 셈이죠.  

장점은 분명합니다. 좌석과 카운터를 없애니 매장의 크기가 일반 스타벅스 매장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초기 인테리어 비용과 임대료를 낮출 수 있는 거죠. 또한 인건비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주문받을 직원과 매장을 정리할 직원이 없어도 매장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수요가 있다는 전제 하에 수익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스타벅스는 '제3의 공간'과 커피를 마시는 경험을 판다는 스스로의 정의와 경영 철학을 포기하는 걸까요?
 
여전히 스타벅스는 공간과 경험을 중요시 여깁니다. 다만 고객의 소비 패턴과 시장 환경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거죠. 코로나19가 있기 전부터 이미 미국에서 80% 가량의 고객이 모바일을 통해 테이크아웃 주문을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이를 더 보편화시켰습니다. 그래서 픽업 전용 매장을 천천히 확대하려던 당초의 계획을 3~5년 정도 앞당긴 것입니다. 대신 공간과 경험도 판다는 정체성에 충실하기 위해 평균적으로 1,600m2가 넘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와 프리미엄 매장인 '스타벅스 리저브' 역시도 확대할 계획입니다. 고객 니즈와 시장 상황을 반영해 어중간한 매장을 줄이고 공간과 경험 중심의 대형 매장과 필요와 편의 중심의 소형 매장으로 이원화하겠다는 뜻입니다.  
 
스타벅스뿐만 아닙니다. 패스트푸드 업계에도 픽업 전용 매장에 대한 실험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멕시칸 패스트푸드로 유명한 '치폴레(Chipotle)'입니다. 치폴레는 2020년 11월, 뉴욕 주에 '디지털 키친'을 선보였습니다. 이곳은 픽업과 배달만 전문으로 하는 매장입니다. 좌석을 없앤 덕분에 디지털 키친은 일반 치폴레 매장 대비 1/2~1/4 수준입니다. 공유 주방인 고스트 키친과 유사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고스트 키친은 배달 기사만 출입이 가능한 반면, 디지털 키친은 고객이 방문하여 픽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방 시설만 있고 브랜딩은 없는 고스트 키친과 달리 디지털 키친에는 로비가 있어 고객들이 치폴레의 음식 냄새나 요리하는 소리 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가 고객 출입구와 배달 기사 출입구를 분리해 번잡함도 줄였습니다. 치폴레의 브랜드 경험을 해치지 않으면서 가성비 높게 운영할 수 있는 모델입니다. 스타벅스와 마찬가지로 고객의 소비 패턴 변화를 읽었기에 가능한 시도죠.  

이와 유사한 시도가 오프라인 리테일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월마트는 2019년, 일리노이주에 커브사이드 픽업 전용 매장인 '월마트 픽업 포인트'를 오픈했습니다. 이 매장에는 손님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온라인이나 모바일 앱으로 주문하고 주차장에 차를 대면 직원이 가져다주는 방식입니다. 마트에서 쇼핑하면서 즐거움을 찾는 고객들이 아니라 원하는 물건을 신속하고 편리하게 사고 싶은 고객들을 위한 모델입니다. 고객 효용이 명확한 만큼 매장의 이점도 분명합니다. 제품 진열, 고객 경험 등을 고려할 필요가 없으니 매장을 공장 시스템처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거죠.  
 
퇴사준비생 이모씨는 스타벅스, 치폴레, 월마트 등의 시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타벅스 픽업, 치폴레 디지털 키친, 월마트 픽업 포인트 등이 보편화되면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죠. 동시에 그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기존의 테이크 아웃 전문 식음료 브랜드들과 비슷한 거 아닌가?

 
닮은 듯 보이는 두 모델 사이엔 작지만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우선 태생과 목적이 다릅니다. 현장에서의 경험이 기본값이었던 브랜드들이 좌석을 없앤 매장을 시도하는 거죠. 애초부터 테이크 아웃을 비즈니스 모델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 소비 패턴에 맞춰 오프라인 매장의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해나가는 적응의 과정입니다. 또한 주문 방식도 다릅니다. 보통의 테이크 아웃 전문 식음료 브랜드들과 달리 현장에서 주문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주문을 할 수 없기에 공간 구성, 인력 관리, 매장 운영 등에서 차이가 생깁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하나로 연계되어 있어야 가능한 모델입니다.  
 
별거 아닌 듯 보일 수 있어도, 픽업 전용 매장은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상식을 흔드는 진화입니다. 오프라인 매장의 강점으로 여겼던 현장의 경험을 과감하게 없앴기 때문이죠. 이처럼 매장에서 '장'의 역할을 없애는 진화도 있지만, 반대의 방식으로 상식을 뒤집는 진화도 있습니다. 매장에서 '매'의 역할을 사라지게 하는 거죠.  
 

변화의 진화 #3. 매장에서 (매)장으로 - 판매의 기능이 없어진다

팔지도 않은 물건을 환불해줘 유명해진 미국의 백화점이 있습니다. '노드스트롬'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한 남성이 백화점으로 자동차 타이어를 가져와 환불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직원은 잠깐의 내부 회의를 거쳐 손님에게 타이어 값을 돌려줬습니다. 여기까지야 어느 백화점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죠. 하지만 반전은 노드스트롬에서 타이어를 팔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팔지도 않은 물건을 모두 환불해 주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했다간 생떼를 쓰는 블랙 컨슈머를 감당할 수 없겠죠. 그날의 사연엔 또 다른 사정이 있었습니다.  
 
이 일은 노드스트롬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지점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지점은 1970년대에 노드스트롬이 알래스카에 있던 지역 백화점을 인수한 후 노드스트롬으로 바꾼 곳이죠. 타이어 환불을 요구한 손님은 노드스트롬이 인수하기 전의 백화점에서 물건을 샀던 것입니다. 같은 장소에 있으니 고객은 동일한 백화점으로 착각을 했던 거고, 눈치 빠른 직원이 이를 고려해 환불을 해준 거죠. 노드스트롬은 이 사례 하나로 고객 중심 경영과 서비스 마인드를 갖춘 백화점으로 확고한 포지셔닝을 굳힙니다.  
 
물론 1970년대의 일화는 그때의 백화점 비즈니스의 미래입니다. 지금의 미래가 되기는 어렵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준비생의 이모씨가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노드스트롬의 고객 서비스를 떠올린 건, 노드스트롬이 만들어 가는 미래에 여전히 고객 중심 경영과 서비스 마인드에 대한 철학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DNA를 가지고 노드스트롬이 제시한 오프라인 리테일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2017년 10월, 노드스트롬은 로스앤젤레스에 '노드스트롬 로컬'이라는 새로운 모델의 백화점을 선보였습니다. 이 매장은 스터프(Stuff, 물건)는 없고 스태프(Staff, 직원)만 있는 매장입니다. 그래서 공간 구성도 일반 백화점과 다릅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을 픽업하고 반품할 수 있는 공간을 일부 갖추고, 나머지는 고객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옷 수선 서비스, 스타일리스트 상담 서비스, 네일케어 서비스, 선물포장 서비스, 음료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것이죠.  

어찌 보면 노드스트롬 로컬은 오만가지 물건을 판다는 뜻을 가진 백화점의 정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시도입니다. 그러나 고객 중심적인 접근이 있었기에 노드스트롬은 이러한 변화를 택합니다. 변화의 출발점은 간단합니다. 고객이 백화점에 찾아오게 만들지 말고, 백화점이 고객을 찾아가자는 거죠. 이를 위해선 백화점을 곳곳에 지어야 하는데 기존 모델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의 백화점은 다양한 물건을 보유해야 해서 크게 지어야 했고, 부동산 비용을 감당하려면 주요 상권에 플래그십처럼 위치해야 수익을 낼 수 있었으니까요.
 
이 구조를 탈피해야 고객이 있는 곳으로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드스트롬은 물건을 파는 기능을 과감하게 없애고, 고객 서비스에만 집중한 것입니다. 고객이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물건을 팔지 않고 서비스만 제공하니, 백화점 규모를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면적으로만 놓고 보면 일반적인 백화점 1개 지을 때 노드스트롬 로컬은 46개 만들 수 있을 정도로요. 이처럼 백화점을 런칭하기가 더 가벼워져서 고객이 있는 곳으로 다가설 수 있습니다. 고객이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기분을 즐기고 싶을 때 고객 가까이에 있을 수 있는 거죠. 첫 매장에서 고객 반응을 검증한 후, 노드스트롬 로컬은 로스앤젤레스에 4개 매장, 뉴욕에 2개 오픈하면서 매장 수를 확대해 나가는 중입니다. 

 

 [폴인인사이트] 테이블 없는 스타벅스, 물류 센터가 된 마트… 오프라인 매장의 상식이 뒤집힌다 - 중앙일보 (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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