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국토교통부와 물류전문매체 CLO가 주최한 <물류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박대준 쿠팡 신사업부문 대표(당시 쿠팡 정책실장)는 쿠팡의 로켓배송은 물류가 아니라 ‘서비스’라 말했다. 2015년 당시 박대준 대표는 “쿠팡 내부에서 쿠팡은 물류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로켓배송 또한 물류라기보다는 하나의 고객 서비스”라며 “우리 서비스는 로켓배송을 통해 완결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참고 콘텐츠 : 국내 첫 물류스타트업 정책토론회 개최, CLO]
그랬던 쿠팡이 지금은 어떠한가. 김명규 쿠팡 물류정책실 전무는 지난 10월 30일 물류의 날 행사장에 발표자로 참가하여 쿠팡의 물류를 ‘혁신’이라 평했다. 김 전무는 “혁신은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이고, 유통과 물류에서 두 마리 토끼는 ‘가격’과 ‘빠른 배송’을 의미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그것”이라며 “둘 중 하나만 잘하는 건, 둘 다 잡더라도 한 번만 하고 마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쿠팡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그러면서 지속가능한 혁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쿠팡의 ‘풀필먼트’는 다르다?
이 날 김 전무가 쿠팡이 ‘가격’과 ‘빠른 배송’을 모두 잡을 수 있는 이유로 강조한 것이 ‘풀필먼트’다. 그리고 쿠팡은 그들의 ‘풀필먼트’가 여타 이커머스 물류 운영과는 비슷해 보일지언정 다른 형태라고 강조한다.
김 전무에 따르면 쿠팡의 풀필먼트가 여타 물류와 다른 이유는 로켓배송의 ‘직매입’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쿠팡은 2020년 기준 600만개의 상품품목(Stock Keeping Units)을 전국 32개 풀필먼트센터에 재고로 보관해둔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커머스 물류센터에서 발생하는 택배업체의 ‘집하’와 허브터미널까지의 ‘간선운송’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구조 개편을 통해 11톤 간선운송차량 기준으로 하루에만 15만km에 달하는 이동 동선을 축소할 수 있다는 쿠팡측 설명이다.
쿠팡은 이렇게 줄인 물류 프로세스를 고객 서비스를 위한 ‘속도’로 치환한다. 쿠팡은 풀필먼트센터를 통해 로켓배송 기본 옵션인 오늘 자정까지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내일 배송하는 서비스는 물론, 시간 단위로 배송이 완료되는 새벽배송, 당일배송 시스템까지 구축했다. 고객이 주문한 상품은 전국 140여개 존재하는 배송거점 ‘캠프’까지 간선차량을 타고 이동하여 쿠팡이 직접 고용한 1만 3000명의 배송기사(쿠팡친구)가 배송한다.
김 전무는 “기존 물류센터가 입출고 업무에 집중한다면, 쿠팡 풀필먼트센터에서는 마치 백화점처럼 상품을 입고하고, 소분, 진열한다. 이후 고객이 쿠팡을 통해 주문을 하면 풀필먼트센터에서는 곧바로 피킹과 포장 작업이 이루어지고, 전국 캠프로 상품을 보내 쿠팡친구가 배송을 마무리 하는 구조”라며 “하루 4시간, 7시간만에도 배송이 가능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우리는 풀필먼트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기술’과 결합되는 풀필먼트
김 전무에 따르면 단순히 ‘직매입’ 유통 구조만으로 로켓배송의 속도를 만들 수 없다. 직매입 구조에 기술이 결합돼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전무가 강조하는 첫 번째 기술은 인공지능(AI) 기반 수요예측이다. 쿠팡 로켓배송은 직매입 구조 특성상 안 팔리고 남는 재고 부담을 쿠팡이 끌어안아야 하는데, 그 부담을 수요예측을 통해서 줄인다는 것.
구체적으로 쿠팡은 전국 각 지역의 고객 수요, 물동량 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공급처에 상품을 발주하고 특정 물류센터에 상품을 분산 입고, 보관한다. 예컨대 부산에 있는 고객들이 선호하는 상품이라면 당연히 인천이 아닌 부산 물류센터에 보관해야 배송효율을 높일 수 있다. 쿠팡은 이 예측 모델을 머신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개선하고 있다.
물류센터에 입고된 상품을 개별 선반에 진열하는 위치 또한 시스템이 지정한다. 쿠팡은 이 시스템을 ‘랜덤 스토우(Random Stow)’라 부른다. 시스템이 물류센터 안의 빈 선반의 위치를 작업자에게 지정하여 상품 진열을 가이드 하는 방식이다. 이후 출고 작업이 진행될 때도 작업자의 동선을 고려하여 피킹할 상품이 있는 보관 선반 위치를 시스템이 지정해준다.
김 전무는 “랜덤 스토우를 통해서 물류센터 작업자의 피로도를 최소화 하고 작업자 동선 근처에 있는 고객 주문 상품을 피킹할 수 있다”며 “반대편 섹터에 있는 작업자들이 또 다른 상품 주문을 취합하면, 이 상품들이 모여서 1층 출고장에서 만나는 식”이라 말했다.
쿠팡의 배송 과정에도 ‘시스템’은 관여한다. 쿠팡의 배송 지역별 물량과 평균 배송량, 배송 인원수 등을 고려하여 시스템이 각각의 배송기사에게 물량을 배정하고 배송 경로를 최적화해 지정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택배업체에서 배송 경로 결정의 주체가 ‘택배기사’라면, 쿠팡은 배송 경로 결정을 ‘시스템’이 한다는 차이가 있다. 쿠팡이 배송기사 각각을 직고용하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방법인데, 이 때문에 쿠팡 배송기사 한 명 한 명의 배송지역과 물량은 매일 달라질 수 있다. 쿠팡 내부에서는 이 시스템을 ‘로딩 SOP(Standard Operating Procedure)’라 부른다.
배송 최적화와 연결하여 쿠팡이 준비한 물류 운영 방식이 있으니 ‘싱귤레이션(Singulation)’이다. 쿠팡이 2019년 신형 화물차 도입과 함께 준비한 것인데, 낱개상품 적재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쿠팡 화물차에 비치된 선반에 각 지역별로 이동할 소포장 상품을 미리 토트박스에 담아놓고 배송기사에게 전달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쿠팡 배송기사는 한 번에 더 많은 상품을, 더 빠르게 배송할 수 있게 된다.
쿠팡 신형차 우측에 배치된 선반과 각 지역별로 이동할 소포장 상품이 담긴 토트박스
김 전무는 “예전부터 쿠팡의 과한 포장에 대한 지적이 많아 도입한 것이 싱귤레이션”이라며 “한 토트박스에는 같은 아파트나 같은 라인으로 이동하는 여러 소포장 상품들이 담기는데, 이를 통해 배송기사의 동선을 최적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관련 콘텐츠 : 이상하게 생긴 쿠팡 화물차의 정체]
물류 아닌 서비스가 물류가 된 배경
처음으로 돌아가 정리해 본다. 추측컨대, 2015년 쿠팡이 너무나 당연히 물류처럼 보이는 로켓배송을 ‘물류’라 부르지 못했던 이유는 있다. 당시 택배업계는 ‘한국통합물류협회’의 이름을 빌려 자가용 번호판으로 화물 운송을 하는 로켓배송의 불법성을 주장하는 민사, 형사 소송을 진행했다. 이 때문에 이 시기의 로켓배송은 ‘물류’여서는 안 됐다. 쿠팡이 ‘물류사업자’임을 인정하는 순간 법적으로 불법성을 인정하는 모양이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0년의 쿠팡은 자랑스럽게 그들의 물류를 물류라, 혁신이라 이야기한다. 2015년과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쿠팡은 한국통합물류협회가 제기한 소송에서 모두 승소했고, 심지어 2018년에는 잠깐이지만 ‘택배사업자’가 되기도 했다. 2019년 쿠팡은 자사 물류에 집중하겠다는 이유로 택배사업자 면허를 자진 반납했지만, 다시 한 번 지난달 국토교통부에 택배사업자 자격을 신청했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더욱이 재밌는 것은 김 전무가 이번에 쿠팡의 물류 혁신을 발표한 ‘물류의 날’은 한국통합물류협회가 주관하는 행사라는 점이다. 쿠팡이 굳이 오랫동안 반목했던 한국통합물류협회가 주관한 행사 발표자로 나서 ‘물류 혁신’을 발표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반대로 한국통합물류협회가 쿠팡을 발표자로 초청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쿠팡도, 택배업계도 서로의 역할과 가치를 인정하게 된 것은 아닐까.
분명한건 물류업계 입장에서 더 이상 쿠팡의 물류를 허투루 볼 수 없다는 점이다. 택배업계의 평가에 따르면 쿠팡은 이미 물동량 기준으로 국내 2, 3위 택배사인 한진과 롯데글로벌로지스를 초과한 물동량을 뽑아내고 있다. 쿠팡의 물류라 부르지 못했던 물류가 풀필먼트가, 더 나아가 혁신이 된 배경이다.김 전무는 “혁신을 위해서는 가격과 배송 속도,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이야기 했는데, 사실 싸게 사서 빨리 받고 싶은 것은 고객의 마음”이라며 “우리는 고객의 마음에 집착하면서 시스템을 만들고 인프라에 투자하고, 사람을 채용하고, 그것을 혁신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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