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에서 KBS에 이르는 1㎞ 구간 서여의도는 중심상업지구이면서도 국회 앞이란 이유로 30년 넘게 도시계획법상 미관지구로 묶여 건물을 최고 55m(한강변은 65m), 대략 15층까지만 지을 수 있다. 동여의도는 용지 면적 대비 12배(용적률 1200%)까지 지을 수 있다. 파크원(333m), IFC(283m), 63빌딩(249m) 등 마천루가 즐비하다. 야누스처럼 완전히 다른 두 지역은 22만9539㎡(약 7만평)인 여의도공원으로 단절돼 있다.
여의도가 이런 모습이 된 이유는 50여 년 전 잘못 세운 도시계획 때문이다. 당시 계획에 참여했던 고(故) 손정목 서울시립대 도시행정과 교수는 "미국 워싱턴 사례를 참고해 서여의도에 높이 제한을 걸었는데 업무·상업지구로 계획된 여의도에는 맞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 계획은 아직도 틀을 깨지 못하고 있다. 2009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한강 공공성 회복 선언`을 할 당시 등장한 여의도 재구조화 마스터플랜조차 동쪽 상업지구를 최고 80층까지 개발한다는 청사진만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여의도 도시구조를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볼 시기라고 조언했다. 여의도가 과연 한국 금융 중심지 기능을 할 수 있는 공간 개념을 갖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 금융허브지수 순위는 2015년 6위에서 올 9월 25위까지 추락한 상황이다. 최근 여당을 중심으로 국회 일부를 세종시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여의도 전체 구조를 재검토하기에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여의도 상업지역은 도시정비형 재개발 사업으로 추진되면 주거용도 비율을 최대 90%까지 높일 수 있어 만성적인 주택 공급 부족 문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도시계획학계에선 금융허브 조건으로 `인프라 집적을 위한 공간 구성`을 꼽는다. 정창무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글로벌 금융 중심지 경쟁력은 금융정책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지만 충분한 업무공간과 지원시설도 필수적인 요소"라며 "지금 여의도는 금융 인프라를 집적해 글로벌 금융회사를 유치하기 위한 장소로선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진단했다.
72층 vs 15층…국회때문에 묶인 西여의도 고도제한 풀어야
서울 여의도를 동북아시아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며 2012년 준공했던 서울국제금융센터(IFC) 타워. 그동안 IFC 타워에 3305.7㎡(1000평) 이상을 임차한 기업을 살펴보면 AIG손해보험, 메리츠종금증권 등을 제외하면 한국IBM, P&G, 한국노바티스, 오텍캐리어, LG전자, OTIS 등 비금융사가 많다.
금융허브를 만들겠다는 애초 취지와는 다르게 글로벌 금융사들이 거의 입점하지 않았다. 동북아 금융허브는 이미 물 건너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IFC 문제는 단순히 빌딩 하나의 문제라기보다는 `여의도`라는 공간 자체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국제 금융허브라는 목표와는 다르게 글로벌 기업에 소외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못다 이룬 글로벌 금융허브 정책을 다시 추진하면서 공간구조도 이에 맞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금융허브의 첫 번째 조건으로 `규제 철폐`를 꼽는다. 실제로 일본은 홍콩 금융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단기 비자 면제·공짜 사무실 제공 등을 논의 중이다. 싱가포르 역시 영어가 공용어이며 법인세가 홍콩과 비슷한 수준(17%)인 점을 내세워 적극적인 구애를 하고 있다. 두바이는 DIFC(두바이 글로벌 파이낸스 센터)를 만들고 해당 지역을 `특구`로 지정해 두바이법이 아닌 국제법을 따르게 했다. 특구 안에선 영어가 공용어이며 심지어 두바이법 체계와 다른 별도 법원까지 운영 중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와 관련해 별다른 노력이 없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싱가포르, 도쿄, 상하이 등과 서울이 경쟁하는 만큼 여의도를 중심으로 서울 일부 지역을 영어가 통하는 외국인 친화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도시계획학자들은 여의도 공간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글로벌 금융회사를 유치하기 위해 충분한 업무 공간과 지원 인프라스트럭처 등을 갖춰 `금융시설 집적화`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디벨로퍼는 여의도 개발이 서울의 만성적인 주택공급 문제에도 해결점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8년 발표된 9·21 부동산 대책에 따라 여의도 상업지역은 도시정비형 재개발 사업으로 추진될 경우 주거용도 비율을 최대 90%까지 파격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우선 동여의도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인 2009년 발표 이후 유명무실해진 재구조화 계획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당시 주민설명회 자료를 보면 동여의도는 2개 전략정비구역으로 묶이고 일반주거지역도 상업지역으로 종상향하도록 되어 있다. 이 계획대로라면 최대 80층에 달하는 주상복합 건물을 지을 수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 재직자들이 최대한 직주근접할 수 있도록 생활의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흔적도 엿보인다. 대표적으로 외국인 자녀를 위해 4개 국제학교를 한강 근처에 만들고, 그 주변은 공원이 조성되도록 구상했다. 판교신도시를 기획한 홍경구 단국대 건축학과 교수는 "금융업 본질상 대면 만남을 통해 계약을 체결해야 하기 때문에 각종 소규모 컨벤션 센터를 여의도 곳곳에 배치하고, 인근 한강에는 고연봉 직장인들이 요트 활동 등을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을 다시 짜야 한다"며 "호텔도 비즈니스급 이상만 받는 등 일정 정도 질적인 관리를 해야 여의도가 고급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국회 때문에 고도제한으로 묶인 서여의도는 도시구조를 전면 재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여당에서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만큼 미적거리지 말고 빨리 현실화하자는 말이 나온다.기존 국회 용지에 핀테크 등 금융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시설을 만들어 동여의도에 입점한 글로벌 금융사와 연계시키고, 인근 용지도 복합개발하면 금융업 집적효과를 더 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국회 용지를 복합개발할 경우 `고밀도 개발`을 통해 청년주택 수만 가구도 같이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도심 고밀도 개발을 한 밴쿠버가 대표적 사례다. 밴쿠버는 3·4층 이하 아케이드 등 저층 상가는 넓게 퍼진 원형 포디엄 형태로, 그리고 상가 위쪽으로는 최고 30층까지 길고 늘씬한 주거용 타워를 만들었다. 마치 팬케이크에 초를 꽂아둔 모양새다. 이를 통해 스카이라인 조망권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고밀도 개발을 통해 많은 주택을 도심에 지을 수 있었다. 신안산선·서부선 등이 10년 안에 여의도로 들어오는 만큼 지하철이 들어서는 여의대로·여의도공원 인근을 크게 뚫어 동여의도와 서여의도를 연결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고질병`으로 제기되던 동·서여의도 단절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경구 교수는 "지상에 있는 여의도공원을 넓혀 녹지공간을 늘려야 한다"며 "동여의도와 서여의도 연계를 위해 무인자동차 등 스마트 모빌리티를 넣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여의도를 넘어 용산까지 개발 영역을 확대하면 더 큰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다. 도쿄 롯폰기힐스를 기획한 모리빌딩에서 한국지사장을 맡았던 박희윤 HDC현대산업개발 전무는 "글로벌 금융허브의 위상치고는 여의도 면적이 좁다"며 "여의도와 용산 국제업무지구, 용산공원 그리고 외국인 친화도시인 이태원을 엮는 큰 그림을 그리고 글로벌 인재들이 올 수 있는 생활권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日, 왕궁 바로 옆 초고층 올려 해외 금융사 대거 입주
금융허브에 올인하는 선진국 日마루노우치·英커네리워프 과감한 인프라 확충에 대변신
도시계획학자들은 금융허브 도시를 만들려면 기반시설을 `집적`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글로벌 금융회사를 유치하기 위해 충분한 업무공간과 지원 인프라스트럭처 등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금융 중심지를 만들기 위해 정책 등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도시계획 측면에서도 주의를 집중하고 있다.
도쿄 마루노우치는 전통적으로 `일본의 월스트리트`라고 불렸다. 미쓰비시UFJ, 미쓰이스미토모, 미즈호 등 일본 1~3위 은행이 자리잡았고, 일본 철도교통 핵심인 도쿄역이 위치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밤 시간대와 주말에는 `죽어 있는 도시`라는 한계를 지적받았다. 왕궁 때문에 고도제한 틀 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여의도 국회 주변이 저층으로 둘러싸인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변화가 일어난 것은 2002년 도시재생특별법이 통과된 이후부터다. 2002년 도시재생특별법이 통과되자 일본 디벨로퍼 미쓰비시는 도쿄도와 손을 잡고 과감한 규제 완화를 이끌어내면서 개조작업에 나섰다. 2002년 미쓰비시그룹 본사 건물인 마루노우치 빌딩 재개발을 시작으로 2004년 오아조 개발, 2007년 신마루노우치빌딩, 2009년 파크타워, 2013년 중앙우체국 재개발, 2016년 호시노야호텔 오픈까지 연쇄적으로 재생 작업이 진행됐다. 특히 도쿄역 광장과 궁 사이에 있는 마루노우치 빌딩과 신마루노우치 빌딩은 성역처럼 여겨졌던 고도제한을 풀고 용적률 1760%를 과감히 적용해 궁에 바짝 붙여 지었다. 이 지역에 글로벌 금융회사가 줄줄이 들어오며 일본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다.
런던 템스강변 동쪽 커네리워프(Canary Wharf)는 영국 금융의 중심지로 리먼브러더스, 씨티그룹 유럽본부, 모건스탠리, HSBC 등 국제적인 금융회사와 다국적 법률회사 및 언론사들이 들어섰다.
도클랜드라 불리는 이 지역은 대영제국 시절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배가 대형화되면서 10m도 안 되는 도클랜즈의 얕은 수심 때문에 대형 선박들은 들어올 수 없게 됐다. 도클랜즈 무역량은 급감했고 일감을 잃은 항만 노동자들도 떠나면서 이 지역은 급격히 쇠락했다.
결국 영국 정부는 1976년 도클랜드 재개발계획을 발표한 뒤 1981년 본격 개발해 커네리워프라고 이름지었다. 이 지역은 개발 초기만 해도 높은 공실률 등이 문제가 됐지만 영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기업 1400여 개가 입주했고, 일자리도 7만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