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에 분식점을 개업한 A씨(52·여)는 배달의민족(배민), 요기요, 쿠팡이츠를 모두 이용한다. 소상공인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한다’는 건 가게를 더 많이 노출하기 위해 광고비를 낸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배민에는 ‘울트라콜’ 광고 명목으로 한 달에 105만6000원을 지불한다. ‘깃발’을 구매하는 개념인데, 깃발 하나를 사서 꽂으면 주변 2㎞ 반경 소비자에게 상호가 노출된다. 깃발 하나 가격은 부가가치세 포함 8만8000원. 깃발이 적으면 상호가 화면 하단으로 내려간다. A씨는 깃발 12개를 매달 산다.
그럼에도 매출은 매달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다. 은행 대출도 어느덧 3000만원으로 불었다. A씨는 “수많은 떡볶이 업체가 플랫폼에 입점해 경쟁이 심하다”며 “매출은 배달 수만큼 증가했지만 실제 수익은 별로 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주점형 한식 음식점을 운영하는 B씨(46)의 배달 매출은 전체의 20%다. 하지만 이익을 따져보면 배달로는 전체 매출이익의 7.3%밖에 올리지 못한다. 배달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월 매출 1240만원 중 플랫폼 광고료·수수료·배달대행료 200만원과 재료비 620만원, 포장비 등 비용 40만원를 제하고 나면 남는 돈은 380만원이다. 여기서 임대료와 인건비 등을 빼면 수익은 더 줄어든다. 그는 “생계유지에 필요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C씨(47)는 홀이 붐비는 점심시간엔 배달을 받지 않는다. 음식 가격에 비해 배달수수료가 너무 비싸서다. 그는 “배민 광고료, 쿠팡이츠의 비싼 수수료를 고려하면 배달에서 얻는 수익은 없다”며 “인건비가 비싸 따로 배달 전담 인력을 가게에 배치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A, B, C씨는 한국법제연구원이 지난 7월 진행한 서울 지역 소상공인 20명의 심층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이다. 법제연구원은 인터뷰 내용을 포함한 보고서 ‘데이터에 기반한 입법평가: 포용적 성장을 위한 입법(Ⅰ)-소상공인지원법’을 내년 1월 발간할 예정이다. 국민일보 취재팀은 해당 보고서를 미리 입수했다.
보고서에는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소상공인의 실태가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음식점 및 주점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 6명 중 5명은 평균 31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주목할 점은 소상공인이 배달플랫폼에 시큰둥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배달플랫폼을 이용하는 4명은 플랫폼을 통한 매출은 늘었지만 광고비와 배달수수료로 인해 이익 증가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공룡’ 플랫폼은 무한확장 중
배달 판매가 썩 만족스럽지 않다는 소상공인 태도와 대조적으로 배달플랫폼은 코로나 시대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배민의 누적 결제 추정 금액은 13조866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9.6% 증가했다.
시장이 커지면서 후발주자들은 공격적 투자에 나서고 있다. GS리테일은 지난 4월 메쉬코리아(부릉)에 508억원을 투자했고, 8월엔 업계 2위 업체 요기요를 인수했다. 최근엔 카카오모빌리티에 다시 650억원을 투자했다. 배달서비스를 뒷받침할 물류 분야 요소요소에 자본을 쏟아붓고 있다. 업계 4위 위메프오는 최근 편의점 CU와 손잡고 편의점 배달서비스 시장에 진출했다. 신한은행은 오는 22일 자체 배달플랫폼 ‘땡겨요’의 시범운영에 돌입한다. 티몬도 지난 4월 배달앱 서비스 계획을 밝혔다.
쿠팡이츠를 운영하는 쿠팡과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앞다퉈 신규 서비스를 출시하고 마케팅 프로모션 비용을 늘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배달플랫폼들이 ‘치킨게임’으로 보일 정도로 외연을 확장하는 이유를 ‘이윤 창출’이란 장기적 목표보다 ‘투자 유치’란 단기적 성과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플랫폼 고유의 특성에서 찾는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투자를 유치하고 회사를 주식시장에 상장시키고 결국 매각함으로써 엄청난 자본을 획득해 제2, 제3의 플랫폼 경제로 뛰어드는 게 플랫폼 경제의 특성”이라며 “시장 점유율을 위해 출혈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경쟁에서 승리한 플랫폼업체는 배달 생태계의 모든 과실을 독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네트워크 효과와 정보자산 독점력 때문이다. 강지원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소비자가 많을수록 입점업체의 효용이 높아지고 입점업체가 많을수록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식으로 돌고 돌며 증폭되는 게 네트워크 효과”라며 “시장을 선점한 업체는 이런 방식으로 먼저 소비자의 음식에 대한 기호를 빅데이터 수준으로 축적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결국 소비자·음식점들은 특정 플랫폼만 사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독점력을 확보한 플랫폼이 부당하고 과도한 중개 대가를 요구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플랫폼산업은 규모가 커질수록 비용이 적어지고 효율은 올라가는 자연독점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며 “경쟁에서 승리한 기업은 결국 독점력에 대한 대가를 받으려 할 것”이라고 경계했다.
소상공인 20명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김윤정 연구위원은 몇몇 플랫폼이 생태계를 과점했을 때 교묘한 ‘배타조건부거래’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배타조건부거래는 경쟁하는 다른 플랫폼과 거래하지 않는 조건을 달아 소상공인을 입점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그는 “앱을 개발한 업체들은 구글플레이와 앱스토어에 동시 론칭하지 않는데 그럴 경우 콘텐츠 배열 순위가 밀리는 걸 자연스럽게 체득했기 때문”이라며 “배민 사원이 음식점에 20~30분간 앉아서 타 배달플랫폼 주문 콜이 울리는지 확인해 눈치가 보였다고 말한 소상공인이 많았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은 배달을 넘어 유통 전반을 장악해 나가고 있는 플랫폼업체의 침투를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배민은 요즘 데이터를 활용해 B마트란 골목형·창고형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입점업체 대상으로 식자재를 납품한다. 쿠팡도 배달 슈퍼마켓인 쿠팡이츠 마켓을 내놨다”며 “유통 생태계가 망가지고 고유 업종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 내부서도 양극화
모든 소상공인이 플랫폼에서 불이익을 얻는 것은 아니다. 배달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성공을 일군 소상공인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성공기의 이면엔 수없이 스러진 소상공인의 눈물도 있다. 그리고 양쪽의 격차는 배달플랫폼이 성장에 속도를 낼수록 커지고 있다.
이공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이 신한카드사의 2020년 전국 86만6591개 외식업체의 816만9989개 월별 매출 자료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액이 가장 낮은 1분위 외식업체의 경우 배달플랫폼을 통한 매출이 월평균 0.34% 증가해 미미한 수준이었다. 반면 매출액이 가장 높은 10분위의 배달플랫폼 매출 성장률은 11.41%로 1분위의 34배였다.
이어 같은 데이터로 지니계수를 도출한 결과 배달플랫폼 매출 총액이 늘고 성장률이 가팔라질수록, 더 많은 음식점이 배달에 나설수록 배달플랫폼 입점업체 사이 매출 불평등도는 개선되지 않았다.
경기도 안산에서 5년간 떡볶이집을 운영한 신모(38)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한때 배민에서 연말 배달 대상을 받고 점포를 하나 더 냈을 만큼 큰 성공을 거뒀다. 지금은 직원 월급을 걱정하고 있다. 배달대행업체 수수료가 인상된 데다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를 포함한 경쟁업체 수가 5년 만에 10배가량 늘었기 때문이다. 신씨는 “예전엔 한 달에 3000만원을 열심히 팔면 1000만원을 가져가는 구조였다면 요샌 똑같이 팔아 300만원만 갖고 간다. 배민1과 쿠팡이츠가 생기고 수익 구조가 나빠졌다”고 말했다.
배민의 ‘울트라콜’ 광고가 양극화를 촉발한 원인으로 꼽힌다. 정액제인 울트라콜을 복수로 구매하면 소비자 노출 범위를 넓혀 매출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 배민은 지난해 4월 울트라콜을 ‘오픈서비스’로 바꾸려 했지만 일부 입점업체 반대로 철회했다. 오픈서비스는 주문 건당 주문금액의 5.8%를 수수료로 받는 체계다. 업체의 광고 노출 순서가 무작위로 정해진다. 일부 업체에 쏠린 플랫폼 광고 체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안이었지만 기존 체계에서 이득을 얻은 업체의 반발을 넘지 못했다.
전현배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배민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땐 가맹점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정액제를 도입했는데, 이는 주로 정률제를 채택하는 전 세계적 추세와 상반된 것”이라며 “가입 업체가 40만개 정도 돼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르자 배민 입장에선 다시 정률제로 바꾸는 게 이득이라 정책 변경을 꾀했던 것 같다. 문제는 소상공인분들이 대부분 어려운 코로나 시국에 성급하게 요금체계를 변경하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플랫폼 사업에서 발생하는 혜택은 양극화하는 특성이 있다. 광고수수료 논란도 누가 얼마나 혜택을 보는지 정확히 파악한 뒤 그 사실에 기반해 갈등을 조절해야지 각자 자기주장만 하고 있으면 해결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사회적 개입 모색해야”
전문가들은 플랫폼의 독주와 부익부 빈익빈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인 개입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현재 국회에는 입점업체에 대한 플랫폼의 갑질 행위를 금지하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 관련법안(온플법)들이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아직 국회 정무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공정거래를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와 산업 진흥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서다. 온플법 자체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플랫폼 업계 사정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온플법은 플랫폼의 과도한 수수료 부과나 부당한 차별 등에서 소상공인을 구제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될 수 있다. 김윤정 연구위원은 “현재 계약서도 안 쓰고 입점하는 사업자가 태반인데 온플법은 계약서 작성과 교부를 의무화한다. 계약서 자체가 증거가 되므로 불공정거래행위를 경감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공 부연구위원은 매출 상위 가맹점에 유리한 배달플랫폼 수수료 체계와 플랫폼 검색순위를 결정하는 알고리즘상 불평등 문제를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검색 알고리즘의 경우 온플법에 계약서 필수 기재사항으로 포함돼 있지만 기재 자체를 각 업체에 맡겨 놓은 꼴이라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앞으로 플랫폼 간, 플랫폼 내부 행위자 간 부익부 빈익빈 상황이 더 커질 수 있다”며 “플랫폼 업체들의 검색 알고리즘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알고리즘 자료를 제출받아 심사하는 데만 1년이 걸린다. 규제 당국이 알고리즘 데이터를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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